마이클 홀리 전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교수는 자신을 '폴리매스(polymath)'라고 소개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학자들처럼 다방면에 전문가인 사람을 뜻하는 단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 비행기와 잠수함을 구상한 과학자였듯 홀리 전 교수는 사진가·음악가로도 활약하는 르네상스형 공학자다. 그리고 "기술과 상상력이 세상을 바꾼다"는 신조 아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지식과 상상력을 전파하는 데 온 힘을 쏟아왔다.
오는 21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릴 '2014 서울포럼'은 기술에 대한 홀리 전 교수의 통찰력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다. 기조강연을 맡은 그는 '기술이 미래를 바꾼다'라는 주제로 참석자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홀리 전 교수는 지금까지 60개국에서 강연한 '베테랑 연사'로 대학 연구뿐만 아니라 기업·비영리단체·문화계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만큼 생생한 이야기로 청중을 휘어잡는 것으로 유명하다. 홀리 전 교수는 "이전까지 인류의 진보는 개개인의 발명에 의존해야 했지만 지금은 전세계적인 범위의 집단지성과 창의력이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도구가 바로 디지털미디어다. 그는 반평생을 '디지털미디어'라는 주제에 천착해왔다. 새로운 방식의 영상, 언어를 통해 지식과 창의성을 전파하고 인류의 소통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한 그의 여정은 10대 시절 처음으로 일자리를 얻었던 벨연구소에서 시작됐다. 당시 유닉스(UNIX) 운영체제 개발에 참여하면서 프로그래밍언어, 즉 디지털언어를 활용한 소통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이후 예일대에 입학해 음악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후 MIT에서 인공지능의 창시자인 마빈 민스키 교수의 지도를 받다가 중퇴한 뒤 지난 1980년대 중반 고(故) 스티브 잡스와 인연을 맺었다.
한때 룸메이트였던 둘은 유사한 점이 많았다. 기술의 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면서도 인문학과 예술·디자인, 창의력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이들은 당시 잡스가 애플을 그만두고 설립했던 넥스트(NeXT)에서 동료로 지내기도 했다. 넥스트의 수석엔지니어로 재직하던 1985년에는 세계 최초의 디지털북을 제작하기도 했다. 당시 디지털북으로 만들어진 셰익스피어의 소설들과 메리엄웹스터사전은 종이책의 미래를 보여준 성과로 평가 받고 있다.
그 뒤 홀리 전 교수는 영화 '스타워즈'로 유명한 루카스필름에서 컴퓨터 연구 부문에 소속돼 디지털영화의 가능성을 연구했다. 가장 오래 몸담은 직장은 MIT로 미디어랩 교수직을 18년간 맡았다. 이 기간에 홀리 전 교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가장 대표적인 프로젝트인 '생각하는 사물(Things That Think)'은 디지털미디어가 모든 물체에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였다. 그 성과 중 하나가 야채나 과일 위에 가장 적합하게 자를 수 있는 선을 레이저로 그려넣거나 유명 요리사의 조리법 같은 다양한 메시지를 새길 수 있는 기기다. 미래의 부엌에 도입될 디지털미디어를 고민한 끝에 발명된 '엉뚱한 기기'지만 미국에서 실제로 시판까지 이어졌다.
홀리 전 교수는 '재미있는 일'에 열광하는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MIT에서 '미래의 장난감들(Toys of Tomorrow)'을 이끌며 전세계의 장난감 제조사들과 미래의 놀이도구를 고민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가장 창의적인 순간은 장난감을 갖고 놀 때"이기 때문에 기술을 접목한 장난감으로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그는 또 '디이지(the-eg.com)' 컨퍼런스의 창립자다. 디이지는 테드(TED)와 비슷한 형식이지만 '아이디어의 공유'라는 슬로건을 내건 테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한 이들을 연사로 내세운다. 엉뚱한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었거나 만화로 그리는 등 무언가를 실제로 창조한 사람들이 디이지의 주인공들이다. 홀리 전 교수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사회 발전의 주역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2001년 '미국에서 가장 창조적인 인물 1,000명' 중 한명으로 꼽혔다.
아울러 홀리 전 교수는 다빈치처럼 예술가 기질이 강하다. 세계에서 가장 커 기네스에 등재된 사진집인 '부탄(Bhutan)' 출간을 주도하고 몇 명의 사진가와 함께 캄보디아와 부탄을 오가며 찍은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당시 사람 키만큼 큰 사진을 고해상도로 찍고 인화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혁신기술이었다.
음악 역시 그의 빼놓을 수 없는 전문분야다. 특히 단순히 감성적으로 즐기는 음악에 그치지 않고 "기술과 과학에 기반을 둬야 음악 역시 더욱 창의적인 이해와 탐구가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홀리 전 교수는 클로드 프랭크, 데이비드 드보 같은 유명 뮤지션들과 종종 협연하며 피아노 콩쿠르에서 수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약력
△예일대 컴퓨터공학·음대 학사
△넥스트 수석엔지니어
△MIT 미디어랩 교수
△디이지 컨퍼런스 창립
△기네스에 등재된 사진집 '부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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