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을 두고 '보신·탁상행정의 전형'이라고 하는 듯하다. 당국이 최근 부실채권(NPL)을 인수해서 영업하는 이른바 '매입채권 추심업자'의 대출분까지 '저축은행의 대부업체 대출 한도'에 포함하면서 기존 신용대출만을 해온 대부업자들이 차입금 상환을 대거 요청받아 신규 대출을 포기하는 등 고사 상태에 놓였다. 이에 따라 당국의 이상한 규제가 도리어 대부업 공급을 위축시켜 서민 대출을 사채업으로 몰고 간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7일 금융당국과 금융계에 따르면 당국은 이달 초 내놓은 '저축은행 자산운용 시 위험 요인 및 향후 대응방안'에서 일부 저축은행에 대부업체 대출 한도 초과분에 대한 해소 계획을 제출하도록 행정지도했다.
현재 대부업체 대출 한도는 '개별 저축은행 총여신 대비 5%'와 '300억원(자기자본 1,000억원 이상은 500억원)' 중 적은 금액으로 설정돼 있다.
이번 행정지도에서는 특히 기존 대출 한도 범위에 신용대출만 해주는 이른바 '진성 대부업체'뿐만 아니라 매입채권 추심업자를 포함시켜 일부 저축은행들은 당장 한도를 초과하게 됐다.
한도 초과 저축은행들은 이에 따라 대부업체들을 상대로 차입금 상환을 요청할 수밖에 없고 이들로부터 돈을 빌린 대부업체들 가운데 300만원 상당의 신용대출을 취급하는 중소형 대부업자들이 영업 중단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는 저축은행이 대부전문업자에 300억원, 매입채권 추심업자에 100억원을 빌려주는 게 관행이었지만 앞으로는 총 400억원 중 초과분(100억원)을 두 업자 중 어느 곳에서라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일본계 대부업체들을 중심으로 NPL 인수를 위해 저축은행으로부터 집중적으로 돈을 빌리면서 한도 초과로 진성 대부업체들이 타격을 입게 된 셈이다.
저축은행 및 대부업계는 매입채권 추심업자가 대부업체의 NPL보다는 주로 여신금융기관의 NPL을 매입·회수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순수한 대부업자로 보기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결국 이들에 대한 대출을 대부업체의 전체 대출 총량(한도)에 포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금융당국이 처음 대출 한도를 설정할 때는 주로 대부전문업자의 상황만을 고려했지 법률 개정(2009년 1월)으로 중도에 대부업자로 전환된 매입채권 추심업자의 성장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매입채권 추심업자의 NPL 매입 활동과 그에 따른 저축은행 차입은 급증하고 있다. 여신금융기관의 장기 부실채권 관리 방식이 신용정보회사 위탁 추심 방식에서 제3자 매각 방식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현재 대부업체에 대한 대출 잔액은 1조5,431억원으로 대부전문업·중개업에 대한 대출이 8,970억원, 대부채권매입 추심업자에 대한 대출이 6,461억원이다. 매입채권 추심업자가 대부업자로 편입될 당시에는 대출 잔액이 미미했는데 몇 년 새 급속도로 성장했던 것.
따라서 현행 저축은행의 대부업자 대출 한도에 매입채권 추심업자를 포함할 경우 대부전문업자의 저축은행 대출 비중이 점진적으로 감소해 결국 급전이 필요한 서민의 자금 공급이 위축,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석승 대부금융협회장은 "대부전문업자 간 자금 차입 경쟁 심화로 조달금리가 상승해 대부전문업자의 경영 악화 및 소비자 대출금리 상승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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