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을 넘어 무서운 하루였다.
11일 오전8시 여느 때처럼 평범했던 출근시간. 지식경제부ㆍ한국전력ㆍ전력거래소 등 전력당국에 갑자기 초비상이 걸렸다. 오전 피크시간(10~12시)이 찾아오기도 전에 예비전력이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연이은 한파의 영향으로 난방수요가 급증한 탓에 오전8시부터 빨간불이 켜진 예비전력은 급기야 8시30분께 400만㎾ 이하로 하락했다. 피크시간도 아닌데 비상 상황이 찾아온 것은 전력당국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당국은 바로 전력수급 '관심(300만~400만㎾)' 단계를 발령하고 비상조치를 시작했다.
이날 오전 전력당국 내부에서는 '심각(100만㎾ 이하)' 단계 조치인 순환정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 아침부터 전력 수요가 올라가는 속도가 너무 가팔랐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날은 영흥 화력발전소에서 문제가 생겨 전날보다 전력공급 능력도 100만㎾가량이나 떨어진 상태였다.
전력당국은 오전 피크시간대에 맞춰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주간예고제 등 한국전력의 수요관리를 통해 기업들의 전력 수요를 200만㎾가량 감축하고 민간사업자로부터 50만㎾ 규모의 전기를 공급 받았다.
전력당국은 또 변압기 탭을 2단계 하강하면서 105만㎾ 정도의 전력을 감축했다. 가전기기를 쓰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전압을 낮춘 것이다. 이와 함께 유연탄을 사용하는 석탄화력발전소의 출력을 높여 37만㎾, 파주와 화성 등의 열병합 발전소를 전기 모드로 전환해 27만㎾를 확보했다.
이날 오전 피크시간대 전력당국이 동원한 전력 감축과 추가 공급의 합계는 430만㎾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비전력이 340만㎾대까지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정부 비상대책이 없었을 경우 사실상 예비전력이 70만㎾가 마이너스인 상황으로 완전한 '블랙아웃'이었다는 것이다. 간당간당 했던 예비전력은 이날 오전 피크시간 이후 오후2시께부터 조금씩 안정세를 되찾았다.
이처럼 살얼음판 같은 전력 상황이 연속해서 이어지면서 동계피크 기간(1~2월)에 맞춰 전력 대책을 준비한 정부의 판단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12월 들어 '관심'단계가 발령된 것이 벌써 세 번째다. 기상청이 올겨울 수차례 이른 한파를 예고했음에도 정부는 동계 피크기간을 지난해와 똑같이 설정했고 이에 맞춰 전력대책을 만들었다. 12월의 전력위기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긴 것이다.
현재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소진된 상태다. 대기업들에 대한 절전 규제 및 선택형 피크요금제는 내년 1월부터나 실시된다. 원자력발전소의 위조 부품 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며 영광 5~6호기의 연내 재가동은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해외 출장 중인 홍석우 지경부 장관은 한파로 전력수급에 연일 비상이 걸리자 귀국을 하루 앞당기기로 했다. 홍장관은 12일 귀국 후 즉시 영광 원전을 방문해 원전 내 위조검증서 부품 교체 작업을 점검하고 주민들과 원전 재가동을 위해 소통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하지만 지경부가 무리하게 영광 원전의 재가동을 추진할 경우 비판 여론도 비등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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