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이 66세. 기획재정부 장관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특보에 이르기까지. 강만수 산은지주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우리 경제의 산 역사이자 최근 수년 동안 적어도 경제계에서는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다. 선이 굵은 그의 정책은 우리 경제의 큰 흐름을 통째로 바꾸기도 했고 시장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강만수'라는 이름에 세간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그가 던지는 말 한마디에는 분명 나라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그런 그가 요즘 입을 굳게 닫고 있다. 두문불출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침묵하고 있다. 원인은 하나, 바로 29일 마감된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에 너무나 깊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입찰 마감 하루를 앞둔 지난 28일, 여의도 사무실을 찾아 어렵게 만난 자리에서도 강 회장은 말을 무척이나 아꼈다. 자신의 말이 곡해돼 또 다른 억측을 불러올지를 두려워한 탓이다. 그만큼 강 회장은 힘들고 지쳐 있었다. 힘들게 꺼낸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그만큼 지난 몇 달 동안의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배어 나왔다. "산은지주의 우리금융 인수가 결국 무산됐네요. 우리 경제에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 될 것입니다." 이 짧은 발언에는 몇 달 동안 그에게 우리금융 인수전과 관련해 닥친 모든 상황들이 압축돼 있다. 특히 "영국의 존 메이어 전 총리도 참 좋은 그림이라고 평가했다"는 말을 전할 때 그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스치는 '탄식'이 절로 느껴졌다. 한국금융산업 발전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는데 결국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인해 무산됐다는 뜻이 그의 표정에서 읽혔다. 산은 고위 관계자의 말은 강 회장이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를 부분적으로나마 전해준다. "왜 반대를 하는지, 또 그 대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반대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강만수 회장'이니까 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흐름이 그냥 그렇게 진행됐습니다. 정부도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서 결론을 내리고 말았죠. (강 회장은) 이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제대로 된 논쟁이 진행되지 못한 채 그대로 무산됐다는 이야기다. 강 회장은 무엇보다 산은지주의 우리금융지주 인수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말은 않겠다. 이미 끝난 상황인데…"라고 말했지만 우리금융 내부의 핵심인력에서도 찬성 의견이 많았다는 사실은 넌지시 전했다. 시너지 효과가 그만큼 컸다는 이유에서다. 산은지주와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영업 분야가 충돌되는 부분도 적어 인수합병(M&A) 이후 구조조정의 부담도 적다. 또 지점이 많지 않은 산업은행으로서는 우리은행의 점포를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숨에 국내 최대 규모의 은행에 버금갈 정도로 커진다. 강 회장은 "산업은행이 매년 낼 수 있는 지점 수가 20개에 불과하다"면서 "지점을 1,000개로 늘리기까지는 50년이 걸린다.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더구나 현재 자금조달의 85%가량이 산업금융채권 발행으로 조달하고 있는데 산은지주 민영화를 위해서라도 수신기반 확충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두 금융지주의 합병이 '산은지주 민영화'와 '우리금융지주 매각' 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카드였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우리금융인수 추진 과정에서 근거 없는 음해나 오해ㆍ왜곡이 많았다고 전했다. 담담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강 회장도 이 부분에서는 목소리가 일시적으로 격앙되기도 했다. 강 회장은 재정부 장관시절부터 업무 스타일이 '직선'이다. 뒤에서의 정무적인 정책조율 등 우회가 없다. 그래서 야당 등 정치권과는 수많은 논쟁을 해왔다. 강 회장은 "정책을 가지고서야 얼마든지 반대의견도 있고 논쟁은 있을 수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사람까지 음해를 해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우리금융 역시 비슷했다고 했다. "'사악한 사람이 참 많구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실과 논리는 배제된 채 무책임하게 사람에 대한 공격만 있었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내가 우리금융인수를 정부보다 앞서 기획하고 추진했다고들 하는데 그건 100% 잘 못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관리자일 뿐이다. 정부가 앞장서고 나는 뒤를 따라 갔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정치권 등에서는 마치 강 회장이 주연을 맡고 금융위원회 등 정부는 조연이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고 했다. 물론 산은지주가 우리금융지주 인수를 추진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는 "때가 되면 그 과정을 자세하게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우리금융지주 인수 논란 과정에서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강 회장에게 반박을 한 데 대한 서운한 감정은 드러냈다. 강 회장은 "산은지주가 우리금융지주 입찰에 참여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정부인 금융위가 결정하는 사안이었다. 내 의견은 말 그대로 참고 사항일 뿐이고 나는 이 일에 법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다. 나에게 반박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더 나아가 "(우리금융인수를 두고) 나는 일관되게 대답할 입장이 아니고 권한도 없다고 말해왔다. '이견이 있어도 의견만 전하는 배우다'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우리금융에서 반박자료를 만들어서 뿌렸다"고 설명했다. 반박의 대상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의 인수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산은지주는 인수할 의향이 없냐'는 데 대해 "(하나지주와 외환은행) 딜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결정은 정부가 한다"고만 전했다. 불필요한 논란이 확대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으로 보였다. 그만큼 상처가 깊다는 뜻이다. 산은지주는 지난해에 외환은행 인수를 타진했지만 당국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는 있다. 방향을 바꿔 거시경제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장관직을 떠났지만 몇몇 경제정책에 대한 그의 시각은 확실했다. 특히 최근 물가대책에 정부의 정책이 집중돼 있는데 '성장'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강 회장은 "물가보다는 성장이 여전히 중요하다"면서 "일자리 창출은 성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성장이 필요한 이유로 실직자 문제를 꺼냈다. 실직자는 국가가 봤을 때는 사회적 약자이고 직장인은 이들에 비해서는 강자인데 국가가 약자인 실직자를 위한 정책을 내놓는 게 바람직하다는 해석이다. 그는 "실직자들에게 '물가'와 '일자리'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기자에게 물은 뒤 "모두 일자리를 선택한다. 그래서 성장이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물가는 너무 높으면 안 된다"고 전제를 달았다. 그러나 "물가를 잡기 위해 성장을 포기하는 것은 안 된다"면서 "사람들은 나를 보고 '성장론자'라고 부르는데 이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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