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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보험의 검은 선택] <2> 법망은 느슨했고 규제는 허술했다

교통법규 위반해도 솜방망이 처벌…안전 불감증 키워<br>중상 입히지 않는 한 형사처벌 무겁지 않고<br>보험사서 알아서 처리 '교통사고 가해자 천국'<br>경찰 음주단속등 급감 관행적인 사면도 문제




"피해자한테 벌금만큼 합의금 주고 합의하자고 하세요. 굳이 번거롭게 경찰서 오고 가고 피의자 조사 받아야 하고 피해자랑 합의만 하면 끝나는 것을. 운전자보험 가입했어요? 가입했으면 합의금도 보험사에서 지급하니까 걱정 마세요." 13년간 사고 한번 안 낸 무사고 운전자 김씨가 보험사 직원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김씨는 지난해 말 횡단보도에 갑자기 뛰어든 행인을 치는 사고를 냈다. 병원에서 만난 보험사 직원은 김씨에게 굳이 가해자가 신고할 필요도 없고 피해자가 합의하면 경찰서를 찾는 번거로움도 없다고 안내했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교통사고를 내더라도 법적인 제재나 금전적인 부담을 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중상을 입히지 않는 한 형사처벌도 무겁지 않다. 느슨한 법망에다 규제 또한 허술하다 보니 안전운전 불감증이 만연해 있다. 오죽하면 '교통사고 가해자의 천국'이라는 얘기마저 나온다. ◇의지 약한 경찰 "단속 제대로 안 해"="요즘은 음주단속을 잘 안 한다. 그러다 보니 과속은 예사고 주위에 술 먹고 운전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길 가다 보면 술 먹고 운전하는 사람들은 확 티가 난다." 20년 경력의 개인택시 기사 이모씨는 하루 종일 운전하다 보면 낮에도 술 먹고 운전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씨는 "예전보다 공갈 카메라 수도 확실히 줄고 음주단속도 골목골목마다 했는데 요즘은 큰 길 위에서도 잘 안 한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적극적인 개입이 교통사고 경감의 필수요건이라고 강조한다.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 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경찰에서 인력이나 경비 등을 이유로 공갈 카메라나 음주단속을 최근 몇 년간 크게 줄였다"며 "인권 침해에 대한 여론이 들끓자 카메라 설치를 없애 교통사고율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연구원은 "경찰조차 경미한 사고의 경우 신고보다는 보험처리를 권유하는 등 교통사고 처리에 대한 문제의식이 갈팡질팡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9년 2월26일은 교통사고와 관련해 아주 의미 있는 날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관련, '종합보험에 가입한 운전자라 해도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으면 형사처벌을 면제 받을 수 없다'며 관련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경찰청이 헌재 결정일(2009년 2월26일)부터 3월4일까지 전국 교통사고 발생 건수를 집계한 결과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사건은 총 98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128건)보다 23.4% 줄었다. 부상사고도 6,047건으로 전년(6,598건)보다 8.3% 줄었고 전체 단순사고 발생 건수도 3,914건으로 집계돼 전년보다 6.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대형 보험사에 접수되는 대인사고 건수도 줄었다. 보험사에는 경찰에 신고되지 않고 쌍방 합의된 교통사고 건수까지 모두 포함돼 있다. 삼성화재가 위헌 결정 전후 일주일인 2월19~25일과 2월26일~3월4일 대인피해자 접수 건수를 비교한 결과 8,639명에서 7,937명으로 8.1% 줄어들었다. 종합보험 가입자의 면책조항이 없어지자 운전자들이 그만큼 '조심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교통법규 위반해도 '솜방망이 제재'=우리나라는 교통사고나 교통질서 위반 비용도 여타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저렴하다. 과속의 경우 우리나라는 범칙금 최고한도가 9만원이다. 반면 일본은 34만원, 영국 185만원, 포르투갈 400만원 등으로 우리보다 4~44배 높다. 당연히 과속운전이 잦을 수밖에 없어 사고유발 가능성이 크다. 이경주 홍익대 교수는 "포르투갈은 교통범칙금 상향 조정으로 2003~2008년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절반이나 줄었다"며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교통범칙금이 낮은 것도 교통법규를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보험료 할증을 통한 압박도 낮다. 현행 할증대상은 6개 항목(음주, 무면허, 뺑소니, 신호위반, 속도위반, 중앙선 침범)으로 제한돼 있다. 할증요율도 낮아서 음주ㆍ무면허ㆍ뺑소니는 20%만 적용된다. 신호위반, 속도위반, 중앙선 침범은 1년에 2건 이상 위반해야 10%가 할증될 뿐이다. 규제의 사각지대도 많다. 범칙금 부과 대상인 무인 단속건 가운데 88%(2008년 기준)는 과태료로 전환된다. 범칙금을 납부하면 자동차보험 할증 대상에 포함되지만 범칙금을 납부하지 않아 과태료 처분 대상이 되면 할증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관행적으로 나오는 사면도 교통법규 위반 제재를 우습게 만든다. 보험개발원의 한 관계자 "사고율이 3년 주기로 오르내림을 반복한다"며 "거의 3년마다 사면제도가 시행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09년 8월 교통사고 법규 위반자 사면(150만명 대상ㆍ전체 면허 소지자 2,527만명의 6%)에 따른 교통사고 증가율은 2.7%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정보통신정책학회의 교통법규위반자 사면정책의 효과분석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사면조치 이후 평균 교통사고 건수는 사면조치 이듬해인 1차년도 약 3%, 2차년도에 약 5% 늘어났다. 이에 따라 2년간 추가로 소요된 경제적 비용도 9,109억원(경찰 집계)에 이른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1조2,735억원으로 추정한다. 허술한 법망과 느슨한 규제, 잦은 사면 등이 대한민국을 '교통사고 유발국가'로 유도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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