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집 유럽서도 불티난 현대·기아차
관세인하 가격경쟁력에 전략형 신차 출시 주효수출물량 82%나 급증 국내업체중 나홀로 질주항공유 수출 3배 급증… 섬유업계도 수혜
김광수기자 bright@sed.co.kr
현대ㆍ기아자동차가 한국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1년 동안 막강한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는 EU 국가들을 대상으로 FTA 발효 전과 비교해 2배 가까운 물량을 수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대ㆍ기아차는 관세인하 혜택에 따른 가격경쟁력과 더불어 전략형 신차를 출시, 당분간 유럽에서 나홀로 질주를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20일 현대ㆍ기아차에 따르면 EU와의 FTA가 체결된 지난 2011년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양사가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한 차량이 18만7,782대로 직전 1년(2010년 7월~2011년 5월)의 10만2,731대보다 무려 82.8%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현대차가 FTA 이전 약 1년간 2만1,683대를 판매했던 것에 비해 FTA 발효 후 5만5,554대로 156.2%나 급증했고 기아차는 8만1,048대에서 13만2,228대로 63.1% 늘어났다.
현대ㆍ기아차의 판매증가는 다른 국내 완성차 업계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GM이 11.5% 줄어든 것을 비롯해 르노삼성(-12.3%)과 쌍용차(-5.6%) 모두 국내 수출물량이 소폭 감소했다. 한국GM 관계자는 "유럽 지역에서 경제위기 등의 영향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돼 자동차 판매량이 줄어들면서 수출물량도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래도 FTA 효과로 나름대로 선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현대ㆍ기아차가 유럽시장 공략을 가속화한 것은 무엇보다 FTA 발효로 관세장벽이 낮아진 것이 결정적 이유로 풀이된다. 한국산 자동차에 붙는 관세는 FTA로 배기량 1,500㏄ 미만 소형차의 경우 10%에서 8.3%로, 1,500㏄ 초과 차량은 10%에서 7%로 각각 낮아졌다. 자동차 부품 관세가 지난해 7월 완전히 없어져 현지생산 차량의 비용절감 효과도 컸지만 현대ㆍ기아차가 유럽에서 생산, 판매한 물량은 FTA 발효 전과 비교해 6.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국내 공장에서 생산한 자동차 수출 증가폭의 10분에1에도 못 미친다.
유럽 시장에서 현대ㆍ기아차의 성장세가 두드러진 이유는 최악의 경기침체를 보이는 유럽연합(EU) 국가를 대상으로 한 판매 전략도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유럽 승용차 판매는 지난해 10월 이후 8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올 들어 5월까지 폭스바겐ㆍBMWㆍ피아트ㆍ르노ㆍGM 등 대부분의 판매량이 감소했다.
현대ㆍ기아차는 이러한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유럽 시장의 주력 차종인 소형과 준중형 모델을 현지 전략형 모델로 내놓으며 거친 파도를 넘고 있다. 현대차는 i10ㆍi20ㆍi30ㆍi40 등 모델이 성장을 이끌고 기아차에서는 모닝(현지명 피칸토), 신형 프라이드(현지명 리오), 신형 씨드 등이 잇따라 출시되며 유럽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효과를 업고 현대ㆍ기아차가 유럽에서 성장하는 동안 국내에서는 수입차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BMWㆍ메르세데스벤츠ㆍ폭스바겐 등 유럽 업체의 국내 판매량은 한ㆍEU FTA가 발효된 후 11개월간 6만845대에서 7만2,444대로(미국 생산 차량 제외) 19.1% 증가했다. 현대ㆍ기아차를 포함해 국내 완성차 5사가 수출한 물량이 16.5%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수입차의 공세가 더욱 컸음을 알 수 있다.
자동차 외에 정유ㆍ섬유업계 등도 한ㆍEU FTA 발효로 유럽 수출이 늘어나며 수혜를 보고 있다.
한ㆍEU FTA는 국내 정유업계에 유럽 시장 공략의 새로운 기회를 열어줬다. S-OIL은 지난해 유럽으로의 수출물량이 한ㆍEU FTA가 체결되기 전인 지난 2010년과 비교해 15.3%가량 증가했다. 특히 FTA 발효로 기존 4.7%의 관세가 즉시 철폐된 항공유 수출은 2010년 150만배럴에서 2011년 440만배럴로 1년 새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유럽으로의 항공유 수출이 전무했던 GS칼텍스와 SK이노베이션도 FTA 발효에 힘입어 지난해 처음으로 유럽에 항공유 420만배럴과 52만배럴을 각각 수출하며 유럽시장을 새로 뚫었다.
유럽으로의 섬유 수출도 한ㆍEU FTA 발효 이후 크게 늘어났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EU 섬유류 수출액은 전년 대비 22.9% 증가한 14억1,800만달러로 집계됐다.
FTA 발효 직후인 지난해 하반기 수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15.8% 늘어난 7억2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우리나라 전체 섬유류 수출 증가율인 9.0%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섬유업계 관계자는 "폴리에스터 단섬유의 경우 FTA 발효 이후 4%의 관세가 사라지면서 대만 등 경쟁업체 제품을 수입해오던 유럽 바이어들이 한국으로 수입선을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전자ㆍ철강ㆍ조선ㆍ해운 업계는 FTA에 따른 관세 인하 혜택이 크지 않고 유럽 재정위기로 수요가 침체돼 별다른 수출 증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식품ㆍ주류업계의 경우 FTA 체결 후 유럽산 와인과 식품의 수입ㆍ판매량이 증가하는 효과를 보고 있다. 특히 유럽산 와인의 경우 관세 철폐로 수입가격이 내려가면서 국내 와인수입업체는 앞다퉈 유럽산 와인 수입 및 프로모션을 확대하고 있다. 금양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지난해 7~11월까지 국내 와인업계의 유럽산 와인 수입금액이 2010년 같은 기간보다 약 40% 증가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