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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그건 난 모르겠고"-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개그 콘서트'에 '그건 난 모르겠고'라는 유행어가 있다. 입주민이 뭐 좀 하려 하면 경비원이 결사코 반대하면서 내뱉는 말이다. '벽에 못을 쳐도 안 된다' '주차장에서 세차를 해도 안 된다' 등 안 되는 일이 너무 많다. 입주민이 내세우는 이유가 아무리 합리적이라도 '그건 난 모르겠고' 하며 손사래를 친다. 자기 얘기만 하고 자기 생각대로만 사는 세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는 공감결핍증에 대한 패러디가 역설적으로 공감을 얻는다.

대한민국 공동체를 팍팍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공감결핍증이다. 독선적 주장은 널려 있지만 상대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여론몰이에는 익숙하지만 믿음직한 공론을 만드는 데는 미숙하다. 종편을 보면 앵커부터 패널까지 종일 선동적인 고성과 걸러지지 않은 강변을 쏟아낸다. 인터넷 토론은 '일베류'와 '노빠류'의 싸움터가 되고 있다. 공감의 폭이 엷어지고 적대감이 깊어지는 사회에서 삶의 질이 높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제러미 리프킨은 21세기를 공감의 시대로 규정했다. 21세기 미래의 성패가 인간의 공감 본성을 전 지구적으로 확산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뇌과학자들은 이미 거울 뉴런 현상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즉 우리의 뇌파가 서로에게 깊숙이 연결돼 있고 인간이 가장 공감 친화적인 동물이라는 것이다. 작은 사회에서부터 큰 지구 공동체까지 공감의 파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인류 본성에 충실한 과업인 셈이다.

공자 철학을 집대성한 황태연 교수는 유교의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서(恕)'를 부각시켰다. 이 서가 현대적 용어로 공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서'라는 한자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의 결합물이다. 마음이 같아지는 상태, 공감이 이뤄진 상태가 서인 것이다.



공감으로 나아가는 몇 단계가 있다. 우선은 더불어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다. 우리 편끼리만 하고 상대를 배제하려는 생각의 장막은 공감의 첫 단추를 끼우지 못한다. 이 마음가짐 위에 합리적 판단을 공유하는 공감의 다음 단계가 형성된다. 예컨대 '성장률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친환경적 성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면 그것은 공감의 두 번째 단계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그다음 단계는 감정이 이입되는 단계다. 한 오디션 프로에서 고아로 십 년간 노숙과 껌팔이를 하면서 검정고시로 공부한 청년이 너무도 명징한 목소리로 '넬라 판타지아'를 부르자 모든 사람이 그의 고통 받은 삶에 눈물로 화답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있었다. 이것이 감정 이입이다. 다른 이의 삶을 걱정해주는 심려와 남을 보살피고 지탱해주려는 배려가 공감의 높은 단계인 것이다.

이 공감의 가장 큰 적은 역시 이분법이다. 옳고 그른 것, 좋고 나쁜 것을 딱 갈라놓는 것이다. 선입견·불신·미움이 여기서 자라난다. 승자 독식과 '빨리빨리'를 추구할수록 이분법은 위력을 발휘한다. 공감을 얻으려는 노력은 왠지 게으르고 순진해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건 난 모르겠고'라는 목소리가 클수록 좋은 사회로 가는 길은 멀어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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