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미친 의약품 가격을 끌어내릴 처방전


특수 항암제는 수많은 환자들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생명을 구한 효자 약이다. 하지만 지난 20년 간 가격이 4배 이상 뛰어 의료보건시스템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이 치료제의 기적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 하려면, 가격을 인하하는 합리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By Peter B. Bach, MD

지난 1970년대, 필자와 필자의 형은 방과 후 귀갓길에 종종 길을 돌아 중고만화서점에 들리는 걸 즐기곤 했다. 서점 한구석에는 플래시 Flash, 배트맨 Batman, 판타스틱 포 The Fantastic Four 같은 낡은 만화책들이 쌓여있었다. 책값은 한 권에 10센트, 두 권에 25센트였다.

형은 세 권은 50센트일 거라고 농담을 했다. 그는 한번에 구매하는 책의 권수가 늘어날수록, 추가되는 낱권 가격은 올라간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런 가격 책정이 판타지로 온통 둘러 쌓인 만화 서점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가격이 합리적으로 책정되는 세상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는일이라고 생각했다.

만화책 대신 특수 치료제 가격표를 더 많이 읽는 요즘, 나는 비슷한 현상을 목도한다. 시장의 기본 법칙과 달리 치료제 가격은 오르기만 한다. 치료가 진행될 수록, 다음 단계 치료제는 이전 단계 치료제보다 항상 가격이 더 비싸다. 심지어 경쟁자가 등장해도, 시장 규모가 커져도, 약 효능이 예상보다 떨어져도 가격은 상승한다.

일라이 릴리 Eli Lilly의 항암치료제 시람자 Cyramza를 예로 들어보자. 미국 식품의약국( FDA)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시람자의 단계별 비용은 약 5만 달러이며 대장암 환자의 수명을 1.6개월 가량 늘릴 수 있다. 그런데 제넨테크 Genentech가 출시한 지 10년 된 아바스틴 Avastin의 단계별 비용은 2만 5,000달러이며, 환자 수명을 1.4개월 정도 늘려준다. 시람자가 아바스틴보다 0.2개월(6일) 정도 생명을 더 연장해주지만 비용은 딱 두 배가 든다는 얘기다.

의약업계에선 치료제 가격 상승 속도가 효능 개선 속도보다 빠르다. 1995년 항암제를 이용해 ‘생존수명(life year)’ 1년 늘리는데 들었던 비용은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5만 달러다. 그러나 현재는 그 비용이 무려 22만 5,000달러에 이르고 있다.

신약만 가격을 올리는 건 아니다. 노바티스 Novartis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Gleevec의 월비용은 2001년 3,000달러였으나(인플레이션을 고려해 환산한 액수), 현재는 9,000달러다. 극소수 영역에서만 사용되는 의약품이라면, 이런가격 급등을 이해할 수 있을 지도모른다. 하지만 글리벡은 FDA의 신규 사용 허가로 오히려 시장이 더 커졌다. 독점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2006년에는 스프라이셀 Sprycel이, 2007년에는 타시그나 Tasign가 시판되기 시작하면서 경쟁자가 등장했다. 그러나 글리벡과 나머지 두 제품의 가격은 내리기는커녕 오르기만 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곳은 또 있다.

제약회사들은 자신들의 치료제가 환자에게 주는 효용이 높고, 해당 치료제를 개발하기까지 들인 비용을 회수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규제에 따른 부담도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지막 주장은 공허한 변명처럼 들린다. 최근 FDA는 일부 치료제의 승인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해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암젠 Amgen의 백혈병 치료제 블린사이토 Blincyto는 작년에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올 여름엔 메디케어 Medicare *역주: 65세 이상 노인 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의 의료 보험 제도가 무작위 임상 시험 결과 없이도 병원에서 블린사이토를 구매할 수 있도록 재정을 지원했다. 그 결과, 암젠은 치료제 효능 입증을 위해 큰 돈을 들여야 하는 부담을 덜게 됐다. 그럼에도 블린사이토의 월 비용은 6만 달러로 여전히 높다-메디케어대상자 1인 연 수입의 두 배가 넘는다(암젠은 월스트리트 저널 the Wall Street Journal기사에서 ‘개발, 생산, 그리고 안정적 수급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데 드는 비용이 치료제 가격에 포함된다’고 Price per life year gained ($1,000s of 2013 USD밝혔다).

치료제 가격에 대한 비난은 보다 어려운 질문으로 이어진다: 수명을 연장하거나 생명을 구하는데 과도하게 비싼 비용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하지만 미국의 특수 의약품 가격은 오를 수 밖에 없어서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올리는 것이다.

치료제 가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나 기관은 없다. 주 및 연방법률에 따라 보험회사들은 모든 종류의 항암제 치료를 보장해야하기 때문에, 제약회사들은 항암제 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의사들도 치료제 선택 시비용을 고려하지 않도록 교육 받고 있다.

이 같은 제도는 바뀌어야 한다. 일반 사람들이 금전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혁신이야 말로 정말 필요한 혁신이다. 제약회사가 임의로 매긴 가격이 아닌, 치료제의 가치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비록 사람마다 가치의 의미는 다르지만) 우리는 여기서 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도 정의를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 정의는 환자만이 아닌 과학과 사회를 아우르는 것이어야 한다.

현재 미국의 제도가 그렇게 되어 있진 않지만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필자는 슬론 케터링 메모리얼 암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에서 동료들와 함께 드럭아바쿠스 DrugAbacus라는 항암제의 적정가치를 판단하는 플랫폼을 개발한 바 있다. 이 플랫폼은 상황별 치료 방식에 따라 달라질 있는 항암제의 적정가치를 여러 사항을 고려한 후 평가한다. 예를 들어 플랫폼 사용자는 치료제로부터 환자가 얻을 수 있는 효용(연장되는 생존수명)이나 개발비등에 가중치를 둘 수 있다.

이는 전혀 새로운 방법이 아니다. 유럽 의료보건제도는 치료제의 가격이 가치에 따라 책정되도록 하고 있다.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 NHS는 료제가 환자에게줄 수 있는 가치에 비해 가격이 높으면, 해당 치료제가 처방되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치료제의 가치에 맞게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치료제를 통해 연장된 생존수명에 따라 가격을 책정한다면, 시람자는 지금과 같은 두 배가 아닌 0.2개월만큼만 아바스틴보다 비싸야 한다. 그리고 블린사이를 포함한 다른 치료제들의 가격도 내려갈 것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이 사노피Sanofi의 잘트랩Zaltrap 적정가치 평가를 통해 너무 비싸다는 결정하고 처방을 거부하자, 사노피는 잘트랩의 미국 가격을 절반으로 내렸다.

치료제의 가격과 가치가 서로 연동되면, 우리는 인간의 삶을 개선하거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중요한 여정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또 혁신이 가장 필요한 곳을 파악할 수 있고, 치료제가 환자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책정되도록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장점은 보험회사가 비싼 특수 의약품에 수천 달러의 고용인 부담금을 부가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그 중고만화서점에서 필자는 항상 한 권을, 형은 종종 두 권을 사곤 했다. 우리는 세권을 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세 번째 책의 가격을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알고 있는 사실은 2020년이면 특수 치료제의 가격이 현재보다 두 배 증가한 연4,000억 달러에 이른다는 것이다. 환자들은 파산하고 메디케이드 Medicaid *역주: 미국 저소득층 의료 보장 제도 와 재향군인 관리국(Veterans Administration)은 적자에 시달릴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혁신을 이루려면, 치료제의 가치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