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면허 더블 O를 소지한 영국 스파이 제임스 본드가 스크린에 등장한지 44년이 지났으나 그 인기가 여전히 뜨겁다. 제6대 본드 데이니얼 크레이그(38ㆍ사진)의 캐스팅을 놓고 골수 007 팬들이 보이콧 운동까지 펼쳤던 21번째 시리즈 '카지노 로열'(Casino Royale)이 지금 미국과 전세계서 빅히트를 하고 있다. 지난 달 17일에 개봉한 '카지노 로열'은 11일 현재 북미서 1억 1,500만 달러 그리고 전세계 50개국에서 2억1,500만달러(4일 현재)의 수입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이 영화가 지금까지 가장 돈을 많이 번 시리즈 '다른 날 죽다'의 총 흥행수입 4억3,200만달러를 능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2차대전 때 영국 스파이였던 이안 플레밍이 쓴 소설들이 완전인 007 시리즈의 제1편은 션 코너리가 주연한 '닥터 노'(1962). 한국에선 두번째 영화 '007 위기일발'이 먼저 개봉됐었다. 본드 시리즈는 편 수를 거듭하면서 하나의 전세계적 팝문화 현상으로서 지금까지 본드 열기를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러나 사실 혼자 힘으로 세계를 파멸하려는 악과 싸우는 본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옛 영광과 힘을 잃은 대영제국의 과거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007 시리즈는 편 수를 거듭할수록 본드 개인의 활약보다 기계와 컴퓨터라는 특수효과에 지나치게 의존, 비인간적인 공상과학 영화로 전락했었다. 이런 본드를 완전히 해체하는 대수술 끝에 나온 새 본드 시리즈가 '카지노 로열'이다. 이번 본드는 국제 테러단의 재정 지원자인 르 쉬프르와 카드와 무력 대결을 하는데 사납고 잔인하고 폭력적인 데다가 초고성능 무기들보다는 개인의 완력으로 적을 제거한다. 이것은 소설 속 본드의 본질로 돌아간 것이다. 새 본드는 다분히 인간적이요 감정적이다. 본드하면 여자를 1회용 클리넥스처럼 여기는 남자로 알지만 그가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소설 시리즈의 제1편의 영화판 '카지노 로열'에서만 하더라도 본드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통곡을 한다. 역대 007 시리즈 중 본드가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눈물을 흘린 영화가 '여왕 폐하의 007이다'(1969). 본드가 사랑 때문에 결혼하고 눈물을 흘린 영화로는 이것이 유일하다. 본드하면 늘 따라 다니는 것이 본드 걸과 마티니와 자동차 등. 시리즈 역대 적 중 가장 '센' 경우를 꼽으라면 '007 위기일발'에 나오는 국제범죄조직 스메르시의 하수인 레드 그랜트(로버트 쇼)와 '닥터 노'에 나온 칼날이 든 중산모를 쓰고 다니는 거구의 킬러 아드잡(소설 속 국적은 한국인이다)일 것이다. 007 시리즈는 섹시한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멋있는 테마음악과 주제가로도 유명하다. 주제가로 빅 히트한 것들은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007 위기일발), '골드핑거' 및 '선더볼' 등이 있다. 제1대 본드 션 코너리에 이어 본드 역은 조지 레젠비, 로저 모어, 티모시 달턴 및 피어스 브로스난 그리고 데니얼 크레이그로 바톤이 이어졌다. 인기도를 매기기엔 아직 이른 크레이그를 제외하곤 역시 코너리가 가장 멋졌다는 평가다. 007 시리즈 중 가장 재미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최근 연예 전문지 EW는 '골드핑거'를 꼽았지만 필자는 '007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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