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금통위원이 경기상황에 대한 인식과 평가를 공개석상에서 드러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하 위원의 발언은 최근 금통위 의장인 김중수 한은 총재가 내놓은 다소 낙관적인 경기진단과도 사뭇 다르다. 하 위원은 인사말을 요청 받자 기다렸다는 듯이 메모지를 꺼내 입을 열었다고 한다. 개인 발언이라고 하지만 작심한 것이다.
역대 금통위원 대부분은 경기 발언을 금기시해왔다. 자칫 시장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침묵의 배경에는 한은 총재와 정부 정책방향에 대한 암묵적 순응이라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지난해 한은이나 정부나 1년 내내 '상저하고'타령만 하다 정책대응에 실기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좀 더 거슬러올라가 2011년에는 한은이 물가안정의 막중한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적도 있다.
사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외환경은 악재와 호재가 혼재돼 있지만 제대로 된 경기논쟁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미국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중국의 경착륙 리스크가 한풀 꺾였다 해도 대외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럽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미국 재정절벽의 끝물도 남아 있다. 수출로 먹고 사는 입장에서 일본의 엔저 공세는 새롭게 부상한 위협 요인이다.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가득한 현실에서 과거와 같은 한쪽 방향으로의 쏠림은 특별히 경계로 삼아야 한다. 금통위 내부의 견제와 균형 원리가 작동하고 소수의 견해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 위원 같은 소신 발언이 더 나오고 금통위 내부의 경기 논쟁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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