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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범죄 몽타주는 600여개의 데이터베이스(DB)를 기반으로 얼굴을 합성하다 보니 그림이 일그러지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힘들었어요. 하지만 3D(3차원) 몽타주 시스템으로 자연스러운 얼굴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김익재(사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영상미디어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지난 9일 서울 홍릉 연구센터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자체 개발한 3D 몽타주 제작 시스템 '폴리스케치'에 대해 몽타주의 일대 변혁을 가져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폴리스케치는 4,000여개의 한국형 인물 DB를 기반으로 범인의 모습을 모든 각도에서 그려낼 수 있다. 지난달 인식·보안 관련 중소기업에 기술을 이전했고 조만간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에서 활용될 예정이다. 3D 몽타주가 범죄 현장에서 활용되면 범인검거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연구원은 "몽타주 기법은 영국과 유럽이 가장 앞섰지만 3D 모듈을 사용하는 것은 한국이 최초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몽타주는 촬영되지 않은 범죄 현장에서 범인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목격자의 기억에 담긴 범인의 인상착의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다.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기 전인 1995년 전까지는 범죄 몽타주를 화가가 일일이 손으로 그렸다. 목격자가 새로운 기억을 더듬어 진술을 바꾸기라도 하면 몽타주를 아예 다시 제작해야 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몽타주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95년께부터다. 미국에서 시스템을 들여왔으나 인물 DB가 모두 미국인 위주로 돼 있어서 한국형 시스템을 갖춘 것은 1998년이 돼서다.
하지만 현재의 2D(2차원) 몽타주는 범인의 정면 모습만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CCTV가 고도로 발달한 요즘 다각도에서 찍힌 범인의 형상을 목격자의 기억과 대조할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폴리시스템은 3D 기술뿐 아니라 범인의 나이 변화, 전체적인 인상까지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비열한 인상' '공격적인 인상' '날카로운 인상'과 같은 목격자의 추상적인 기억까지 몽타주에 반영하도록 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눈이 처지고 턱이 커지는 등 한국인 특유의 얼굴 변화도 프로그램에 삽입했다. 눈썹 두께부터 두상, 얼굴형까지 점 단위로 미세 조절할 수 있는 기능도 있다. 기존 2D 몽타주 제작 시스템에서는 서로 다른 스케치 작법으로 합성 시 전체 얼굴이 부조화되는 현상을 일거에 해소했다.
김 연구원은 "마치 잃어버린 부모를 찾아 유전 조합을 해나가듯이 목격자가 기억하는 근접한 얼굴을 단계별로 찾다 보면 최종적으로 가장 유사한 몽타주를 만들 수 있다"며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에도 전체적 인상만으로 몽타주를 작성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KIST의 3D 몽타주 시스템은 범죄 수사 현장을 넘어 성형 시술, 영화, 애니메이션, 미아 찾기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유럽 등에서는 3D 형상 기술을 민간에서 이미 활발히 활용하는 상황이다. 또 폴리스케치를 앞세워 중국을 시작으로 미국·유럽 몽타주 솔루션 시장에까지 진출할 예정이다. 김 연구원은 현재 CCTV 속 인물과 몽타주를 직접 대조할 수 있는 3D 기술을 연구 중이다.
김 연구원은 "3D 몽타주 프로그램이 아직 낯설다 보니 앞으로 현장 교육을 많이 해야 한다"며 "더 광범위하게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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