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을 꼽으라면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 음악으로도 많이 쓰였고 광고 음악으로도 단골 메뉴다. 서정적인 선율과 탄탄한 짜임새로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곡들이 즐비하다. 파블로 카잘스나 미샤 마이스키, 요요마, 로스트로포비치 등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연주로 유명세를 떨친 연주가들도 많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으로 적당히 바흐를 즐길 수 있을 때쯤이면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독일 브란덴부르크 지방의 후작 크리스티안 루드비히 공의 의뢰를 받아 작곡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바흐라는 클래식의 거대한 산맥을 등정하기 위해선 한번쯤 멈춰가야 할 산장과 같은 곳이다. 모두 여섯곡으로 구성된 이 방대한 작품을 모두 연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내외. 연주 시간도 문제지만 연주자의 체력을 소진 시키는 기교적인 까다로움 때문에 이 여섯 곡을 한자리에서 연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루체른 페스티벌과 같은 유럽 유수의 축제 무대에서도 이 브란덴부르크는 이틀 일정으로 레퍼토리를 짜는 게 일반적이다. 20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바흐오케스트라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 연주회에 참석한 관객들은 비행기 삯을 아끼고 유럽 축제 무대를 방문한 행운을 누린 셈이다. 바흐와 바로크 음악에 조예가 깊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바흐오케스트라의 이날 연주는 우리 시골 장터 구수한 뚝배기 맛을 떠올리게 한다. 첫 곡인 1번 협주곡과 휴식 이후 후반부에 연주된 6번곡에서 현악 파트의 약간의 흐트러짐이 있었지만 기교적인 문제로 거론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날 연주의 하이라이트는 그 유명한 4번(BWV 1049)과 5번(BWV 1050)이었다. 바이올린과 플루트, 하프시코드의 끌고 당기는 유쾌한 음악적 수다는 아주 오랜 경륜의 만담가들의 재치 있는 대화를 엿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바흐 당시에는 플루트가 아닌 리코더가 사용됐지만 이번 바흐오케스트라의 공연에서는 플루트가 대신했다. 정격연주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조금 아쉬운 대목이지만 이날 플루트 솔로 연주자는 깔끔하면서도 화려한 음색으로 이 같은 아쉬움을 달래줬다. 팀의 리더인 백전노장 크리스티안의 풍케의 바이올린 선율은 자신의 소리를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전체 단원과 조화를 이룰 줄 아는 절제의 미덕을 지녔다. 요즘 유행하는 정격연주자들의 카리스마나 톡톡 튀는 개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거장 바흐의 모습을 떠올리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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