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에서 하나금융그룹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이 떨어진 지난 27일 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한껏 취했다. 임원 30여명과 저녁을 같이하면서 몇 차례나 술잔을 돌린 그는 "정말 고생이 많았다"며 임원들의 등을 두드려줬다. 한국투자금융이라는 조그마한 단자금융회사에서 출발한 하나금융이 대한민국 2위의 거대 금융그룹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28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할 때도 김 회장의 목소리에는 떨림과 기쁨이 묻어났다. 그 때문인지 지금까지는 밝히지 않았던 향후 외환은행 경영구도를 공개했다. 본인의 거취에 대해서는 "정말 쉬고 싶다"고 했지만 인수 후 경영 청사진을 얘기하는 김 회장의 목소리에는 어느 때보다 강한 열정이 묻어났다.
외환銀 직원 지주회사에 쓰겠다
김 회장은 인터뷰 내내 외환은행 직원들을 원활하게 품을 방안을 얘기했다.
그는 먼저 외환은행 직원들을 하나금융에서 일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외환은행 직원들을 보듬고 하나금융과 하나가 됐다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외환은행 경영은 윤용로 행장에게 100% 맡기겠다고 했다.
"외환은행 직원들이 주주만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도록 할 예정입니다. 외환은행 직원들도 지주회사로 와서 같이 일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
급여 등 처우는 손대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회장은 "인위적으로 혼자만(외환은행) 깎으면 일을 하겠느냐"며 "외환은행 직원의 보수를 깎는다든가 하는 거는 안 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외환銀 고객중심 마인드 필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좋은 게 좋은 것'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 회장은 일선 지점장들의 철저한 경쟁과 성과주의를 중요시하기로 알려져 있다.
"외환은행이 말 그대로 외환 전문은행으로 커오다 보니 상업적인 마인드가 조금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고객 중심의 마인드가 필요하고 그것을 키울 예정입니다."
물론 외환은행 직원들의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할 계획이다.
"억지로 시키는 것보다 외환 직원들이 스스로 느껴 움직이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하나와 외환의 중복점포(거리 100m 이내)가 40개 정도 되는데 합치지 않고 놓아두다 보면 아마 외환 직원들이 좀 느끼지 않겠습니까. "
외환은행 지분 70~80%까지 높인 뒤 상장폐지 논의
김 회장은 외환은행 지분을 중장기적으로 70~80% 수준까지 높일 예정이다. 금융지주사들의 경우 은행은 핵심 자회사이기 때문에 완전자회사(지분 100% 소유)로 갖고 있다.
"외환은행 지분 51%를 갖게 됐는데 올해부터 꾸준히 지분을 사모아 70~80% 수준까지 높일 계획입니다. 그때쯤이면 외환은행의 상장폐지를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외환은행은 코스피시장에 상장돼 있는데 소액주주들 입장에서는 같은 그룹에 있다 보니 하나은행과 이익충돌의 가능성이 있다.
"쉬고 싶다", "하나高와 미소금융재단은 맡을 것"
김 회장은 본인의 거취에 대해 "이제는 정말 쉬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잠도 못 잘 정도로 할 만큼 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물론 금융권에서는 이사회에서 김 회장의 연임을 강력하게 요청해 그가 1년 정도 더 일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많다.
김 회장은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의 후보에 본인이 들어가느냐는 질문에 "내가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모르겠다"며 "개인적으로는 확고한 생각이 있지만 이사들이 아직 생각을 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내가 말하는 게 예의가 아니어서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하나고등학교는 계속 맡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직은 오는 2월15일 임기가 만료된다. 이 때문에 김 회장은 하나미소금융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싶다는 뜻을 공개했다.
"미소금융에 대한 애정이 큽니다. 하나미소금융재단은 은행장이 이사장으로 돼 있는데 은행장의 짐도 덜어드릴 겸 부탁해서 내가 맡아 봉사하려 합니다."
하나금융ㆍ교보생명 지분교환 사실무근
김 회장은 교보생명과의 지분교환설(說)은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최근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경영권 방어 문제가 화두인 신창재 회장이 하나금융과 지분을 바꾸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KB금융 등과의 주식교환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김 회장은 "(교보와는) 전혀 접촉한 적도, 검토한 적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해외법인 승인 받는 대로 인수대금 납부
하나금융은 27일 금융당국에서 인수 승인을 받은 만큼 5영업일 내에 인수대금을 치러야 한다. 이번주 중에는 관련작업이 끝나야 한다는 얘기다.
김 회장은 "홍콩하고 뉴욕지점이 있는데 그쪽에서는 경영상의 중요한 변동사안에 대해 현지 금융당국의 사전승인을 받게 돼 있다"며 "이 때문에 지난 금요일(27일) 신청서를 냈는데 승인을 얻는 대로 론스타에 대금을 치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단순한 기술적인 절차로 이 작업이 며칠 정도 걸릴 듯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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