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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외환위기 1년의 교훈

한국은행 부총재보 朴載俊외환위기로 촉발된 미증유의 경제위기가 우리나라를 강타한지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간 우리 경제는 외화고갈, 환율·금리 급등, 기업 대량부도, 실업급증, 신용경색, 경기침체 등 실로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토록 암울했던 위기상황에서도 우리 국민은 좌절하지 않고 경제회생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바닥났던 외환보유액이 크게 늘어나 벌써 IMF차입금중 일부를 상환할 수 있게 되었고 환율과 금리도 예상보다 빨리 안정을 되찾았다. 극도로 침체되었던 실물경제도 얼마전부터 조금씩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요즈음은 냉랭하기만 하던 외국투자가의 눈길이 한결 부드러워져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조만간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할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있는 만큼 지금쯤은 현안문제에서 잠시 눈을 떼어 외환위기 1년을 되돌아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1년에 대한 소회(所懷)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필자에게는 무엇보다 먼저 외환위기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몇가지 교훈을 잘 가르쳐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분수에 넘치는 것을 추구하면 반드시 화가 따른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기업들은 재무구조가 나쁘면서도 앞다투어 빚을 끌어다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였다. 가계도 부동산이나 주식에 능력 이상으로 투자하거나 소득을 초과하여 흥청거린 예가 많았다. 경제주체들의 이러한 행동은 우리 경제의 과속성장을 낳았고 이는 외환위기의 한 원인인 경상수지 적자 및 외채누증으로 이어졌다. 우리 속담에 있는 대로「제 몸 크기대로 굴을 판다」는 게의 지혜를 빨리 깨달았어야 했다. 열 마디 말보다 한번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도 외환위기가 주는 교훈이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경제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개혁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무수한 논의가 있어 왔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닥칠 때까지는 말만 무성하였을 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IMF체제하에서 추진되어 온 구조개혁의 내용을 보노라면 과거 우리 스스로가 이미 논의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실천의 중요성을 더 더욱 절감하게 된다. 또한 자만이나 방심은 실패로 가는 길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1960년대 이후 우리 경제가 지속해 온 고도성장에 대해 국제사회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쭐해진 우리는 1980년대 말경부터 마치 선진국이 된 듯이 행동하였다. 이러한 우리의 자만은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서고 OECD 가입을 추진하면서 더욱 부풀려졌다. 특히 1996년 들어 경상수지 적자가 대폭 확대되어 연간 적자액이 경상GDP의 4.7%에 달하고 대기업의 부도가 이어지는 등 경제위기의 징후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과신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1997년 7월 태국에서 발생한 외환위기가 동남아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을 때에도 기초경제여건이 튼튼한 우리나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 치면서 닥쳐올 위기에 대비하지 않았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미리 대책을 세웠더라면 외환위기를 막지는 못했을지언정 위기의 충격을 줄일 수는 있었을 것이다. 외환위기는 또 우리에게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세계가 하나로 통합된 지구촌시대에 살면서도 국제화·세계화를 구호로만 내세웠을 뿐 실제로는 바깥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다. 국제자본이나 국제신용평가기관의 위력이 얼마나 막강한 지를 잘 모르고 있었다. 은행감독, 회계처리, 기업지배구조 등에 관한 제도와 관행을 국제적 기준으로 고쳐 나가는 것이 얼마만큼 중차대한 일인지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우리가 세계질서의 변화를 미리 파악하여 능동적으로 대응했더라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환위기가 일깨워준 이와 같은 교훈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듣고 배운 상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상식은 누구나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경시하기 쉽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이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것은 국가차원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면 국가 전체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최근 들어 우리 경제가 다소 좋아지는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우리는 잊어버렸던 상식을 상기하면서 위기가 완전히 극복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하겠다. 경기의 빠른 회복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겸허한 마음으로 좀 더 고통을 참아가면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여야 한다. 세계경제의 흐름을 통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경제제도 및 관행을 국제수준으로 수렴시키는 노력도 지속되어야 한다. 지금은 「시작이 반」이 아닌 「백리에 구십리가 반」이라는 속담을 되새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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