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공동개발을 포기함에 따라 자동차용 반도체 국산화 프로젝트는 핵심기술을 갖추지 못한 ‘쭉정이 사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됐다. 10년 후 한국경제를 먹여살리겠다는 야심찬 구상은 결국 ‘물거품’으로 변해버린 셈이다. 특히 세계적 반도체ㆍ자동차업체들이 손잡고 기술개발 및 시장확대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대표적인 반도체ㆍ자동차업체의 균열은 글로벌 경쟁력에도 적지않은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우려된다. ◇삼성전자ㆍ현대차 공조는 왜 깨졌나=양사간 공동개발을 좌초시킨 도화선은 무엇보다 자동차 기술유출 논란이었다. 당초 양사는 정부가 적극 주선에 나서자 차량용 반도체와 관련한 공조체제 구축을 적극 검토했었다. 양사간 공동연구부터 조인트 벤처 설립까지 구체적인 방안이 다양하게 모색됐으나 현대차가 자동차용 기술 공개를 꺼리면서 갈등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는 삼성그룹이 자동차사업 부문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보장이 있어야 협력할 수 있어 삼성카드 보유의 르노삼성차 지분(19.9%) 처리 등을 주장했다”며 “ 이후 감정싸움으로 번져 지난해부터 양사간 협의가 사실상 끊겼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후 자동차용 반도체의 국산화 필요성이 다시 이슈화되자 올 들어 현대모비스와 삼성전자간 협력이 검토됐으나 이번에는 삼성전자가 사업성이 불투명하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삼성전자 측은 “초기에 수백억원 이상의 자금을 들여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해 국산화 제품을 양산한다고 해도 자동차업체들이 구매해줄지 알 수 없어 기술개발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시스템LSI사업 부문 강화를 통해 비메모리사업 확장을 추진 중이지만 해당 사업 부문 내에 차량용 반도체 관련 태스크포스팀조차 없는 상태다. ◇핵심 칩 빼고 주변기술만 진행=이처럼 삼성전자 없이 자동차용 반도체 국산화가 국책사업으로 추진되다 보니 핵심칩 기술의 기반을 제외한 채 주변기술 개발만 진행되고 있다. 이번 국책사업에 참여 중인 한 업체는 차량용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차량 섀시컨트롤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정작 반도체업계에서 먼저 개발해야 할 핵심칩 기술 국산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차량용 섀시컨트롤 관련 기술이 시너지를 낳자면 국내 반도체업계에서 최소 2년 전에는 핵심칩 기술을 지원해야 하는데 이 같은 핵심 기술개발이 전무한 상황이어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했다. 현대모비스 역시 차량용 반도체 중 최대 시장을 자랑하는 범용 핵심품목인 마이크로컨트롤러(MCU)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시스템 온 칩(SoC)의 일부 특화 기술 개발에만 매달리고 있다. ◇개발 지원방향 재점검해야=업계에서는 이 같은 파열음이 이미 차세대 성장동력사업 발주 초기부터 예고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인 로드맵 없이 숱한 프로젝트가 중구난방식으로 출발했고 때문에 사업 추진이 어려운 핵심기술 개발보다는 주변기술 중심으로 사업이 진척돼왔다는 것이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 핵심사업의 경우 초기 판로 확보가 어렵고 기술유출 등으로 사업리스크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지 못한 채 정부가 연구비만 지원해주면 업계가 공동연구에 나설 것이라고 오판한 것은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관련 국책사업이 실효를 거두려면 연구비용 지원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신기술ㆍ신제품의 초기 시장을 육성시켜 기업들의 투자리스크를 줄이고 공동연구시 기술유출 문제 등을 조율해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 역시 “최근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의 각종 연구개발 프로젝트들에 대해 중간점검 평가를 시작했다”며 “중간성과를 점검해보고 정부가 더 지원해줄 수 있는 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모색해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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