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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보다 흥미진진한 월스트리트 이야기
입력2005-06-06 10:36:16
수정
2005.06.06 10:36:16
미국 뉴욕의 맨해튼 섬 최남단에 자리잡은 월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자타가 공인하는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명성에 걸맞지않게 비좁은 거리와 낡은 건물에 실망하기 십상이지만 이곳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배신, 권력쟁탈의 비화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삼국지 보다 흥미진진한 월가의 이면을 속속들이 파헤친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주뉴욕총영사관의 우태희 상무관이 지은 `세계경제를 뒤흔든 월 스트리트 사람들'이 바로 그 책이다.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수많은 월가의 투자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을 만났던 우상무관은 자본주의의 심장으로 불리는 이곳의 실체를 본격적으로 파헤쳐봐야겠다는생각에 틈날 때마다 관련 책자를 읽고 자료를 분류해 왔다.
3년여에 걸친 이 같은 노력이 방대한 분량의 사진과 그림, 도표를 포함한 448쪽짜리 책으로 정리돼 나왔다.
결코 작지 않은 분량이지만 경제나 금융에 문외한인 독자도 쉽게 소화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어 부담스럽지는 않다.
피흘리는 전쟁터 못지 않게 치열한 월가의 생존경쟁은 한편의 대하소설을 보는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의 금융제국인 씨티그룹의 이면에는 `오월동주(吳越同舟)'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를 연상케 하는 비사가 자리잡고 있다.
1998년 4월6일 발표된 씨티코프와 트래블러스 그룹의 합병은 월가판 `오월동주'라고 할 수 있다.
두 업체의 결합은 세계 100여개국에 27만명의 직원과 2억명의 고객을 확보한 초대형 금융종합그룹인 씨티그룹의 탄생을 가져왔지만 하늘과 땅만큼 스타일과 철학이다른 존 리드 씨티코프 회장과 샌디 웨일 트래블러스 그룹 회장의 공존이 오래갈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공동 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새로 탄생한 씨티그룹의 경영책임을 공유했지만 결국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 없듯 한쪽의 도태는 필연적이었고최후의 승자는 지모와 계략에서 앞선 웨일 회장 쪽이었다.
22세의 나이에 투자은행 베어 스턴스의 사환으로 시작해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웨일 회장은 누구보다도 월가의 생존원리를 잘 아는 인물.
웨일 회장은 자신과 리드 회장 간 한판승부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을 이사회에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한 계략을 마련했다.
이사회에서 두 사람의 지지세는 비슷했고 사외이사 중 가장 영향력이 큰 AT&T의마이클 암스트롱 회장의 지지를 누가 얻는지가 승부의 관건이었다.
웨일 회장은 씨티그룹의 권위있는 통신산업 애널리스트인 잭 그룹먼을 동원해 AT&T에 대한 투자의견을 `보유'에서 `강력매수'로 상향조정했고 그 결과 AT&T의 주가는 치솟았다.
AT&T의 주가 급등에 흐뭇해진 암스트롱 회장은 당연히 웨일 회장의 든든한 원군이 됐고 웨일 회장은 마침내 리드 회장을 몰아내고 `금융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그룹먼은 AT&T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었지만 웨일 회장에게 밉보이면쫓겨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투자의견 상향조정 압력에 맞설 수 없었다.
웨일 회장은 모든 일이 뜻대로 마무리된 후 그룹먼의 쌍둥이 자녀가 뉴욕시내최우수 유치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주는 등 나름대로 보답했다.
그러나 하늘 아래 비밀은 없는 법. 웨일이 AT&T의 투자의견을 상향조정토록 그룹먼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았고 마침내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의혹을 뒷받침하는 그룹먼의 사내 e-메일이 발견되면서 웨일 회장은 절체절명의궁지에 몰리게 된다.
결국 이 사건으로 웨일 회장은 글로벌 기업.투자은행 책임자인 찰스 프린스에게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회장직만을 지키다 2006년이면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조조처럼 권모술수에 능한 그가 2006년까지 어떤 계책을 마련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편 씨티그룹 내에서 공인된 웨일 회장의 후계자였던 제임스 다이먼의 축출과월가 귀환은 그야말로 `와신상담'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30년간 웨일 회장과 동고동락해온 다이먼은 살로먼스미스바니의 CEO로 있던 1997년 웨일 회장의 딸 승진 문제로 그와 결정적으로 등지게 된다.
살로먼스미스바니의 뮤추얼 펀드 책임자였던 제시카는 임원 승진을 기대했지만회장 딸이라 할지라도 너무 빨리 승진하는 것은 스스로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 다이먼은 승진대상에서 제시카를 제외했고 노발대발한 그녀는 회사를 떠났다.
이 사건 후 웨일 회장의 견제에 시달려온 다이먼은 결국 1998년 11월 씨티그룹에서 쫓겨났고 월가를 떠나 시카고에 본부를 둔 중견은행 뱅크원의 CEO가 됐다.
과감한 구조조정과 공격적인 영업전략으로 뱅크원의 사세를 크게 신장시킨 다이먼은 2004년 미국 2위의 은행인 JP 모건 체이스와의 합병을 성사시키고 합병은행의사장 겸 영업담당이사(COO)로 월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 때부터 월가에서는 그를 `돌아온 탕아(the Prodigal Son)'라고 부르게 됐다.
`세계경제를 뒤흔든 월 스트리트 사람들'에는 이밖에도 `기라성같은 월가의 영웅호걸들과 악한들'이 등장한다.
`월 스트리트의 아버지 JP 모건', `월 스트리트의 왕 존 굿프렌드', `살아있는전설 피터 린치',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정크본드의 제왕 마이클 밀켄', `기업 사냥꾼 이반 보스키' 등.
저자인 우 상무관은 "월가 펀드 매니저들의 모토는 `일찍 출세해 빨리 은퇴하기'이며 이들의 평균 나이는 29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사에 따르면 월가에 근무하는 사람들 중 우울중 환자가 23%나 돼 미국인 평균인 7%의 3배 이상에 이른다"면서 "월가에는 2인자가 없으며 오직 정상의 1인자가 되기 위한 권력투쟁만이 있을 뿐"이라고 단언했다.
우 상무관은 "9.11 사태 후 월가는 회계부정과 애널리스트 비리, 펀드 매니저들의 불법거래에다 보험업계 담합까지 겹쳐 바람잘 날이 없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가는 매우 매력적인 곳이며 한번쯤 젊음을 바쳐 도전해보고 싶은 곳"이라고 밝혔다.
http://blog.yonhapnews.co.kr/choowh/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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