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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지배구조개편 '오락가락'

비상임이사 임기단축안 폐기 움직임비상임이사의 역할과 이사회의 기능을 강화해 은행장의 전횡을 견제하고 외압을 막겠다는 취지로 지난해 대폭 개편된 은행지배구조가 올들어 슬그머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은 애써 큰 흐름을 바꾸지 않는 범위 내의 「합리적인 조정」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우선 당국의 지시에 의해 주요 시중은행들은 비상임이사들의 일괄사표를 받아냈고 임기를 1년으로 단축하기 위한 정관개정안을 마련했다. 「매년 경영실적을 평가해 이사의 유임여부를 결정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비상임이사라고 해서 「경영의 연속성」과 무관한 것이 아니고 만약 경영에 책임이 있다면 오히려 상임이사나 집행이사들에게 1차적으로 물어야 하는데 비상임이사만 일괄사표를 내라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의 한 사외이사는 『당국의 이번 조치는 사실상 비상임이사의 「실권(失權)」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불만은 이미 여러 경로로 금융당국에 강력하게 전달됐다. 각계 각층의 비상임이사들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바뀐 은행지배구조 개혁의 핵심 포인트가 「비상임이사」임을 감안하면 당국 스스로가 은행개혁의 초점을 희석시키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가장 민감한 부분인 인사문제까지 들먹여졌다. 9일 이용근(李容根) 금융감독위원장과 은행장들이 모인 조찬회에서 『집행이사 임명과 관련해 은행장에 전권을 달라』는 일부 은행장의 솔직한 요구가 불거져 나왔고 이에 대해 李위원장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련의 정황에 비추어 금융당국은 아무래도 지난해 시도한 비상임이사 중심의 은행 이사회제도의 역기능을 인정해 슬그머니 물러서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처음부터 비상임이사의 역할에 대해 말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전문성이 없는 비상임이사들의 권위적인 처신과 일부 은행에서 불거진 은행장과의 갈등, 은행간부들의 비상임이사 앞 줄서기와 인사잡음 등 드러난 문제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지배구조개편 1년 만에 다시 메스를 들이대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않다. 과도기의 문제점들이야 어차피 예견됐던 일인데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비상임이사들의 실권이 결국 관(官)의 은행에 대한 지배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들도 나온다. 반면 시중은행 임원들 가운데도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훨씬 크다면 몇번이라도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바꾸는 편이 낫다』거나 『우리 금융계 현실로 볼 때 은행장이 일을 제대로 하도록 권한을 몰아주는 게 맞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은행의 지배구조를 현실에 맞게 개선해나가는 측면도 있지만 당국과 은행장의 이해(利害)가 일치해 과거로 회귀하는 인상이 더 강하다는 게 금융계의 중론이다. 성화용기자SHY@SED.CO.KR 입력시간 2000/03/11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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