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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13부. 중기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라 <1> 기업 인프라가 먼저다

기술 인증 받는데만 1년… '탁상행정 가시' 부터 뽑아야<br>정부 기관 인증 독점 탓… 병목심화·수출까지 발목<br>보조금 목매는 기업 관행… 퍼주기식 정책 개선 시급

김문겸(가운데) 중소기업 옴부즈만이 원주에 있는 자동차 에어클리너 생산기업 세원을 방문해 한만우(왼쪽) 대표로부터 제품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중소기업 강국이 되려면 옴부즈만 활동처럼 '손톱 밑 가시’를 뽑아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 높다. /사진제공=중소기업옴부즈만



화학제품 제조기업인 A사는 주문이 폭주해 공장 착공을 준비하고 있으나 허가까지 첩첩산중이다. 관련 서류만도 수백쪽에 개별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모두 상대하다 보니 2년 넘게 시간만 소요되고 있다.

일부 공무원은 업무를 차일피일 미루거나 만나는 것조차 피하면서 모 컨설팅 업체를 통하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고 있다. 공무원들이 추천하는 컨설팅 업체에서는 인허가를 도와주는 대가로 공장 투자비용의 10% 내외를 떼어먹는 퇴직공무원들이 일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허가를 위해 지금까지 수억원이 들었다"면서 "중소기업이 제대로 일해보려 해도 정부가 건건이 규제로 발목을 잡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11일 중소업계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호가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별로 바뀐 게 없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온다. 불필요한 낡은 규제는 여전히 기업, 특히 중소ㆍ중견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식의 직접적인 자금지원보다는 불합리한 법ㆍ제도ㆍ관행을 타파해 기업하기 좋은 생태계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대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금ㆍ세제지원 같은 단발성 지원이 아니라 중소기업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산업생태계를 구축해 물고기를 잘 잡을 수 있는 환경과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중소기업들을 힘들게 하는 대표적인 나쁜 환경은 낙후된 시험인증 시스템이다. 인증은 법정인증 109개, 지자체인증 44개, 민간인증 81개 등 총 234개에 달한다. 그런데 몇몇 정부 산하기관들이 독점적으로 칼자루를 쥐다 보니 인증병목 현상이 생겨 기업들은 6개월에서 1년 이상씩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많다.

세계 각국은 인증 무기로 무역장벽을 쌓아 올리는데 우리는 해외수출의 디딤돌이 돼야 할 인증제도가 오히려 브레이크로 작용하는 셈이다. 남궁민 산업기술시험원(KTL) 원장은 "기업들은 자식과 같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시간싸움이 중요한데 자칫 경쟁사가 시장잠식을 한 뒤에 들어갈 수 있다"며 "수출을 위해 해외에 나가 인증을 받을 경우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말했다.

비용부담도 만만치 않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실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소기업이 각종 제품 인증을 받기 위해 부담한 비용은 5조9,000억원 수준이다. 이는 지난 2007년보다 무려 40%가 늘어난 수치다. 관련 협회나 이익단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수수료 수익을 위한 인증사업에 끼어들려고 한다. 예를 들어 생활용품가구의 경우 건당 1,800만원의 비용을 들여 KS와 친환경인증 2개를 취득하지만 70%의 검사항목이 동일하다.

결국 정부는 조달납품과 연구개발(R&D), 정책자금 지원에서 인증이 있으면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인증을 요구하며 기업들은 과도한 수수료를 납부해 협회ㆍ기관의 배만 불리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로 인해 인증의 순기능은 퇴색할 수밖에 없다.



원격진료 같은 신기술이 도입되는 경우 기득권집단과 정치권이 반대해 민간규제를 만들어 신산업 성장을 저해하는 점도 한국의 산업생태계를 황폐화하는 요인이다. 바이오벤처기업 나노엔텍은 원격진료기기라는 신시장을 창출했지만 정작 의료법에 막혀 국내 판매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자국 내 판매실적이 전무하니 해외시장 개척에도 어려움이 크다. 정부가 창조경제를 외치면서도 정작 정보기술(IT) 융ㆍ복합 기술 도입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중소ㆍ중견기업들이 정부 지원에만 목을 매 손을 벌리는 기생적 사고와 퍼주기식 시스템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고위관료들의 현장방문에서 기업 애로사항 1순위는 항상 정책자금 지원 확대다. R&Dㆍ인력 등에서 기업 규모와 관계 없이 정부에 돈을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 아주 익숙한 것이 한국적 기업 마인드다. 이로 인해 기업 스스로 필요한 부분에 투자하는 데도 인색해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우리나라 중소기업 300개를 대상으로 최근 3년간 기술개발ㆍ생산ㆍ마케팅 등의 분야에서 혁신활동을 추진한 적이 있는지를 물은 결과 절반가량인 48.7%가 '없다'고 응답한 것이 단적인 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정책의 투명성과 일관성ㆍ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에 잠재돼 있는 기업가정신 DNA를 깨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ㆍ중기 간의 관계도 1단계로 불공정거래를 타파하는 데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글로벌 시장에 동반 진출하도록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국내 시장에서의 공정경쟁도 중요하지만 시장이 작은 까닭에 내수시장만으로 중소ㆍ중견기업이 성장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장우 경북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ㆍ현대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1,000개가 넘는 협력기업과 세계로 나간 성공사례가 있다"면서 "대ㆍ중기 또는 중소기업 간 협력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신뢰관계를 쌓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외국과 경쟁해 앞설 수 있는 산업생태계를 만들려면 근본적으로 한국이 공정한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기업이 공정하게 경쟁을 벌이는 풍토를 만들어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현 산업연구원 산업경제연구실장은 "기업이 생산적인 기업활동으로 살아남고 이것이 이익의 원천이 되는 경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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