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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웅 휴먼칼럼] `싱가포르 이야기'
입력1998-09-29 20:19:00
수정
2002.10.21 23:08:38
경찰병력을 늘이면 범죄는 주는가. 논리상으로는 맞는 말이나 사실은 다르게 나타난다.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마운트 헐리요크대학 사회학과 교수 리차드 모건박사가 벌인 실험 결과가 재미난다.
모건 교수는 미조리주의 캔사스시티 시내 15개 경찰서를 상대로 벌인 조사결과를 통해 그 답을 밝히고 있다. 그는 시내 15개 경찰서를 3등급으로 분류, 첫 5개 경찰서 관장구역에 평소보다 3배나 많은 경찰 병력을 투입했다.
두번째 그룹인 5개 경찰서에는 평소보다 반으로 준 병력을, 세번째의 5개 경찰서에는 평소와 같은 병력을 각각 투입했다. 그렇게 1년동안 순찰을 편 결과, 세등급의 경찰서 사이에는 범죄발생면에서 하등의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는 또 경찰관 1인당 주민수효가 똑같은 두도시 샌디에고(캘리포니아주)와 댈러스(텍사스주)를 골라 조사활동을 벌인 결과 댈러스의 범죄율이 샌디에고보다 항상 2배로 높게 나타나있음을 확인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캘리포니아주에 비해 텍사스주의 주법이 느슨했기 때문이다.
경찰병력의 증감은 범죄예방이나 퇴치와 무관한 것이다. 이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사실을 아시아의 한 국가지도자는 진작부터 체득,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밝히고 있다. 싱가포르의 국제인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보름전 펴낸 자서전 「싱가포르 이야기(The Singapore Story)」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아시아 최고의 복지국가 싱가포르의 존재가 결코 우연이 아닌, 지도자 한 사람의 지각과 배짱에서 비롯된 것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지난 16일 그의 75회 생일을 맞아 출간된 이 책은 두 대목에서 국제적 화제가 되고 있다. 하나는 그가 만 스무살이던 1943년 점령국 일본군부의 앞잡이로 AP, 로이터, 타스통신 기사의 번역사로 일하며 외신에 비친 전황을 점령군에 낱낱이 고자질 한 점, 다른 하나는 그 때 일본군부로부터 터득한 범죄인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훗날 싱가포르를 통치하는데 그대로 적용했다는 점이다.
그가 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받는 데는 이처럼 자신의 과거까지를 국민앞에 거리낌없이 고백할 수 있는 큰 정치인 특유의 금도(襟度)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위인됨에 새삼 관심이 가는 것은 오히려 두번째 대목-범죄에 대한 엄격한 법의 집행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화교(華僑)국가다. 동남아 화교의 특징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하나가 국적의식의 불명이다. 국민각자가 두세나라 여권을 지니는 것이 보통이고, 특히 상혼(商魂)과 결탁된 응집력의 해이는 국가공권력 행사의 장애 요인이 돼 왔다. 이런 풍토의 화교국을 지금 국가의 대외 신인도면에서 세계 7위라는 준 낙원국가로 만드는 과정에서 리콴유는 범죄 퇴치를 주무기로 채택한 것이다. 나라의 어디를 눌러야 바르르 떠는지, 어느 단추를 풀어야 체통과 공신력이 수립되는지를 그는 범죄와의 투쟁을 통해 체득한 것이다.
구미감각으로 보면 그의 지난 31년 집권은 법치를 가장한 철권통치로 비난받을 수도 있다. 파리의 웬만한 식당이나 카페에는 재털이가 아예 비치돼 있지 않은 곳이 많다. 담배 꽁초는 바닥에 버리도록 돼 있고 그래야만 꽁초를 쓸어담는 청소부들의 밥줄이 끊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구미 정서에 침이나 담배꽁초는 물론 과식만 해도 처벌 사유가 되는 싱가포르의 처사가 과연 어떻게 비쳤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법을 지키되 준법의 필요성과 의미를 지키는 것과 단지 처벌이 무서워 지키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이 이런 비난의 근거다.
이에 대해 리 콴유는 자서전을 통해 대답한다. 『가혹한 법집행이 불러온 공포는 분명 해악』이었음을 인정하고 또 그 원인을 『청년시절 일제 군부밑에서 겪은 체험이 알게 모르게 몸에 밴 탓』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대신 결론에 가서는 양보하지 않는다. 범죄에 관한한 관용은 결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혹한 처벌만이 묘약임을 집권 경험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오늘의 싱가포르를 있게 만든 존재 이유가 아닐수 없다.
「싱가폴 얘기」로 그칠 일이 아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의 기업도산과 실업자 범람에 비춰 한국사회도 조만간 범죄와의 전쟁을 치러야 할 형국이 닥친다는 점이다. 리콴유의 철권 드라이브에 반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운전 솜씨까지를 비난할 수는 없다. 더구나 경찰이 늘어난다고 범죄가 줄지는 않기 때문이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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