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을 만들어 시장에 방향을 제시하고 규제라는 장치를 통해 시장의 과열과 부당경쟁을 막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정부의 권위가 바로 서야 한다. 애석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권위를 잃은 심판이 권한만 휘두르려 하니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만 쌓이고 있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해 하반기 금융권을 뜨겁게 달궜던 소비자 민원감축 이슈는 정부의 설익은 대책이 시장질서를 얼마나 교란시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금융당국의 수장이 직접 민원감축의 목표치를 제시하자 민원 만능주의가 블랙컨슈머를 양산하고 애꿎은 소비자만 피해(보험료 인상)를 볼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소비자 민원은 오히려 크게 늘었고 일부 보험사는 영업인력을 민원 현장에 투입하는 무리수를 둬야만 했다.
최근 논란을 낳았던 텔레마케터(TM) 고용안정 문제나 사기업에 대한 인사개입, 갖은 편법을 통한 낙하산식 전관예우 등은 우리나라 정책당국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권위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주어지는 것인데 권위를 잃은 심판이 권한만 휘두르려고 하니 실정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시장의 비정상을 감독하고 견제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정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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