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성숙한 여자' 된 올리버 스톤 'WTC'서 9·11현장 휴머니즘 조명부시의 대테러 정책 비난하기도 지난 7월 개봉 후 호평과 함께 흥행에 성공하며 현재 상영 중인 9.11 테러를 다룬 '월드 트레이드 센터'(World Trade Center-한국서는 10월 개봉 예정)는 영화 자체 보다 감독 올리버 스톤(59)이 더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영화는 정치색이 거의 배제돼 정치적인 감독으로 널리 알려진 스톤이 이제 나이가 먹어 물렁해진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는 여객기가 충돌한 WTC 건물에 구조작업차 들어갔다가 붕괴된 건물 잔해에 깔려 죽음 직전에 이르렀다 구조된 2명의 뉴욕 항만경찰에 관한 실화다. 철저히 두 경찰의 주관적 시각으로 그려진 영화는 생명력과 희생정신 그리고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한 휴먼 드라마로 영화의 성질이나 연출 스타일이 모두 과거의 야단스러웠던 스톤의 것이라고 보기에 힘들 정도다. 영화 개봉 직전 베벌리힐스의 포 시즌스 호텔에서 가진 스톤과의 인터뷰에서도 이 점이 여러 번 논의됐다. 스톤은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영화 '플래툰'이 베트남전에 대한 신화적 요소를 파괴했듯이 'WTC'는 그 날에 대한 신화적 분위기를 발가벗기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편이 아니면 적이다'라는 조지 W부시 미 대통령의 카우보이적 관점에 조소하면서 9.11 테러가 너무나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스톤은 이어 "WTC를 비롯해 모든 영화들은 결국 인간성에 관한 것"이라고 밝히고 "서로 사랑하고 상호 연계돼야 할 필요야말로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입장이며 나이가 먹을수록 점점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대로 이 날 본 스톤은 평소 알던 격정적인 사람이 아닌 성숙한 현자와도 같았다. 그러나 본인의 "난 정치적 감독이 아니다"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 날 많은 발언들은 정치적 의미를 함유하고 있었다. 스톤이 반체제적 정치 소신을 갖게 된 것은 베트남전의 참전 경험 때문이다. 그는 1965년 다니던 예일대를 도중 하차하고 베트남전에 일반병으로 두 차례나 복무, 2개의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애국정신으로 자원 입대했던 스톤은 실제 전투를 하면서 베트남전의 무의미와 전쟁의 참상을 겪고 급진 진보파가 되었다. 당시 전장의 경험을 그린 것이 '플래툰'인데 스톤은 인터뷰에서 'WTC'도 '플래툰'처럼 현장시각에서 경험자의 체험에 충실하게 만든 영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반베트남 3부작격의 영화들인 '플래툰'과 '7월4일생'도 결국 이라크전을 막지 못했다면서 "본질적으로 9.11의 결과는 그 날보다 훨씬 더 나빠졌다"고 말했다. 진보파인 스톤이 9.11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는 보도가 나갔을 때 우파들의 우려와 반대를 샀었다. 그래서 제작사인 파라마운트는 영화 개봉 전 워싱턴에서 공화당의원과 보수인사 들을 위한 특별시사회까지 열었다. 그러나 시사회 후 보수파들의 호응에도 불구하고 스톤은 부시 정부의 시민들에 대한 도청과 은행구좌 조사에 관해 수치스런 일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이와 함께 미국인들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을 얘기하면서 현재 건강이 악화된 쿠바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의 말을 인용했다. 스톤은 몇 년 전 쿠바에서 카스트로에 관한 기록영화 '코만단테'(미국에서 아직 배급되지 않고 있다며 웃었다)를 찍었는데 "카스트로가 '역사는 반복하나 우리가 인식치 못할 뿐'이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 인터뷰 후 스톤과 악수를 하며 내가 그에게 "부인(한국인으로 둘 사이엔 10세난 딸이 있다) 잘 있느냐"고 묻자 "아주 잘 있다"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만나서 정말 반갑다"는 인사에 "댕큐 서(Sir)"라고 깍듯이 존댓말로 화답했다. 입력시간 : 2006/09/0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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