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모를 불황에 시중통화량 감소

시중에 풀려 있는 돈의 양이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줄고 있다. 극도의 내수침체로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살아나지 않고 중소기업ㆍ가계의 신용도 하락으로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축소 또는 회수하면서 시중에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9일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중 통화량의 근본이 되는 본원통화는 평균잔액 기준으로 지난 10일 현재 35조7,000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0.1% 감소한 데 이어 20일 현재 36조3,000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0.9%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 같은 감소세가 이달 말까지 지속된다면 IMF사태를 겪고 있던 99년 1월(-8.7%) 이후 5년여 만에 월별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돌아서게 된다. 본원통화는 올들어 1월 9.6%, 2월 4.0%, 3월 7.2%, 4월 3.8%, 5월 5.2%, 6월 4.3%, 7월3.2%, 8월 2.8%로 연말로 다가갈수록 증가율이 급속히 둔화되는 양상이다. 특히 지준총액과 함께 본원통화를 구성하면서 내수경기 흐름을 직접 반영하는 현금통화는 10일 현재 18조9,000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5.0% 감소한 데 이어 20일 현재 19조1,000억원으로 6.0%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본원통화가 이처럼 줄어들고 있는 데는 지난해 추석 연휴 시작일이 9월10일로 올해보다 보름 정도 빨라 기술적 반감효과가 크게 작용했다는 게 재경부와 한국은행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기술적 반사효과를 감안하더라도 IMF사태 이후 통상 경상성장률을 넘는 증가율을 보여온 본원통화가 이처럼 쪼그라들고 있는 것은 경기침체 장기화로 신용경색이 심화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금융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추석 연휴가 끼었던 2002년 9월은 15.3%, 지난해 9월은 9.8%의 증가율을 각각 기록했었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추석이라는 계절적 요인이 있기 때문에 이달 말까지의 추이를 좀더 지켜봐야 한다”며 “그러나 극도의 내수침체가 통화증가율을 급속히 떨어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돈이 풀리는 속도와 흐름을 보여주는 총유동성(M3) 증가율도 8월 말 현재 5.9%(재경부 월간 경제동향)로 잠정 추계돼 지난해 연평균 증가율 8.8%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M3 증가율은 통상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더한 수준이 적정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