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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그때 가족은 무엇을 했나


울창한 숲길을 빠르게 걷는 한 소년에 100m쯤 뒤떨어져 아버지가 터덜터덜 뒤따라왔다. 지난 16~17일 제주에서 열린 학교폭력 피해자 힐링캠프에 참가한 가족 중 한 쌍이다. 캠프는 어느덧 이틀째로 접어들었지만 부자의 거리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는 생업이 바쁘다는 이유로 평소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자녀의 잘못을 매로 다스리는 엄한 사람이었다.

아들은 학교에서 받은 상처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더 커 보였다. '좋아하는 게 뭐야'라는 질문에도 묵묵부답인 아이 앞에서 아버지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부모와 자녀가 어긋나는 모습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부모가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으려 해도 자녀가 거부하는 가족도 있었고 자녀는 오랜만에 아빠와 신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아버지는 몰려오는 피곤 때문에 캠프 내내 꾸벅꾸벅 조는 경우도 있었다. 평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어떤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학교폭력 피해를 입으면 남 탓을 하기에 바쁘다. 교사는 학생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등한시했고 개념 없는 가해 학생과 부모는 제대로 사과도 보상도 하지 않으려 든다. 물론 그들이 저지른 만큼의 과오에 대해서는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수년에서 십수년을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생활해온 가족이 자녀가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까지 무엇을 했는지 먼저 돌아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가족이 아이에게 해줘야 하는 일은 거창한 것도 시간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힐링캠프에서 만난 여러 가족 중 그나마 피해 사실을 금방 부모에게 털어놔 빠르게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가족들은 모두 평소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을 대화했었다. 그들은 기자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자녀의 손을 잡고 있거나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거나 하는 작은 스킨십에도 익숙했다.

일 때문에, 성격이 무뚝뚝한 편이라서 아이를 방치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무엇보다 중대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오늘 하루는 어땠니"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하면서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학교폭력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고 또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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