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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위법 저질러도 대주주 자격 유지… 10대그룹 '저축銀 사태' 수혜

[재벌총수 금융 대주주 노릇 쉬워진다] ■ 금융사 지배구조 법안 대폭 후퇴


"수신기능 없는 금융사에 고강도 규제 일률적용 한계"
대주주 적격성 심사 은행·저축은행에만 적용
이사회·감사위원회 기능 강화… CEO 전횡 방지 방안도 축소
시행도 전에 '반쪽 법안' 전락


국내 금융회사들은 지난 2010년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논란이나 신한금융지주 경영진 간 분쟁처럼 최고경영자(CEO)에 의한 경영권 고착화, 대표이사 선임과정에서 부적절한 외부 영향력의 행사, 경영 리더십 공백에 따른 승계 시스템 부재 등의 문제가 꾸준히 부각돼왔다. 정권 말기마다 은행 사외이사직은 정권실세들을 위한 낙하산 인사로 정계와 관계 인사들의 놀이터로 변질되는 일 역시 일상화됐다.

아울러 재벌들이 거느리고 있는 금융계열사는 '사금고화' 우려와 함께 전문성 없는 재벌 일가들이 족벌체제로 운영하다 실패를 맛본 사례도 있다.

이러한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총체적인 부실에 메스를 꺼내 들겠다는 것이 바로 금융회사 지배구조 제정안의 취지였다. 아울러 은행ㆍ보험ㆍ증권ㆍ카드 등 업종 간 규제차이를 넘어 통합된 지배구조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때문에 지난해 12월 금융회사 지배구조 제정안이 입법예고될 당시만 해도 학계와 시민단체는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구태를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환영했다.

하지만 법안의 가장 핵심 쟁점으로 꼽히던 대주주 적격성과 관련해 정부가 큰 폭의 수술 작업을 하면서 국내 10대 그룹 대주주 상당수가 수혜를 보는 현상이 발생했다.

지난해에 이어 최근까지 3차례에 걸친 저축은행 구조조정 사태로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대주주의 적격성에 대한 감독강화 움직임을 보이면서 재벌계 금융회사들이 역으로 감독당국의 화살을 피하는 반사이익을 보게 된 셈이다.

금융당국은 해당 법안을 오는 6월 개회될 19대 국회에 상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법 시행도 전에 법안 본연의 취지가 크게 훼손됐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주주 위법 시에도 자격 유지 가능=금융위가 지난해 12월 입법예고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제정안은 은행(6개월 단위)과 저축은행(2년 단위)에서만 시행하고 있던 주기적 대주주 적격심사를 금융투자업ㆍ보험사ㆍ여전사ㆍ지주 등 6개 업권에 모두 도입하겠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보험사와 여전사 입장에서는 없던 제도가 새로 생기게 된 셈이며 금융투자업은 유지의무만 있었지만 이번에 구체적 심사규정까지 만들어졌다. 당국은 대주주가 자격이 미달한다고 판단하면 요건충족명령, 의결권 제한, 주식처분명령 등을 부과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특히 이 경우 보험사와 카드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국내 주요 대그룹들의 대주주 적격성이 금융당국 심사·제재 대상에 포함된다. 금융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이나 그룹 총수가 범죄 등에 연루되면 의결권이 정지당하고 강제로 주식매각 처분이 내려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에 재계는 즉각 반발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주주에 대한 규제는 개별법이나 모범규준에 적절한 수단이 마련돼 있는데 입법을 해야 하는 목적이나 실익이 명백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속내는 제정안이 금융회사를 거느린 재벌총수 일가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어 이를 견제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재계에서는 해당 법안이 시행될 경우 '사실상 재벌총수나 그 일가족 중 대주주자격이 박탈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재계의 거센 압력에 결국 정부는 3월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법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주기적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기존처럼 은행과 저축은행에만 적용하도록 법안을 대폭 축소하게 했다. 카드나 증권, 보험 등의 금융회사 대주주가 위법행위를 저질러도 대주주 자격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저축은행 사태에 '어부지리'=금융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 그룹사들은 시기적으로 운도 따랐다.

지난해 16개 저축은행들이 업계에서 퇴출되는 과정 속에 대주주들의 비리와 자격미달 문제가 크게 불거졌다. 이에 금융당국이 저축은행법 개정안을 7월 상정한 것이 빌미가 됐다.

대주주의 경영부실을 막기 위해 저축은행 대주주의 불법 혐의를 적발할 경우 금감원이 이를 직접 검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처럼 저축은행 대주주에 대한 관리ㆍ감독을 한층 강화하는 법안이 이미 입법예고된 상황에서 금융회사 지배구조 제정안이 오히려 저축은행 대주주에 대한 검사 강도를 낮출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업종에 관계 없이 일률적으로 적용할 경우 증권이나 카드, 보험사와 같은 업종의 대주주에게도 저축은행과 같은 요건을 갖추도록 하게 되고 이는 업종의 성격에 비해 과도하다는 얘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수신기능이 없는 금융회사에도 은행이나 저축은행처럼 강도 높은 규제를 적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시행도 전에 절름발이 된 제정안=대주주 적격성 심사 문제와 함께 경영진을 감시하기 위해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려고 했던 방안도 대폭 축소했다. 당초 제정안은 부행장처럼 미등기 임원이더라도 업무집행 책임자는 임면될 때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해 기존에 CEO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줄 세우기를 하던 전횡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발 물러서 재무ㆍ정보기술ㆍ전략 등 핵심임원에 대해서만 사외이사를 거쳐 임면하기로 하면서 CEO의 권한을 당초 안보다 도리어 확대했다.

이 밖에 제정안 입법예고 이후 공청회 과정에서 학계나 시민단체에서 요구했던 안들은 관철되지 않아 이번 제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다.

당초 학계에서는 상근임직원 및 비상임이사의 사외이사 냉각기간을 3년에서 통상적인 모범규준인 5년까지 강화하거나 업무집행책임자의 자격요건 중 전문성 요건을 강화해 낙하산 인사를 차단해야 한다는 의견 등은 반영되지 않았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의 한 관계자는 "제정안의 핵심 사안들을 정부가 대폭 수정하면서 법안 취지 자체가 무색해졌다"며 "제정안 자체도 세부적인 규제 사안은 대부분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어 향후 법안 시행시 실효성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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