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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이 시끄러운 지금
입력2002-10-10 00:00:00
수정
2002.10.10 00:00:00
미국의 대(對) 이라크 공격을 그들의 주장처럼 '반테러의 성전(聖戰)'으로 보는 시각은 순진해 보인다. 언필칭 "악에 맞선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는 미국은 지난 주말 후세인 궁 사찰 수용 의사를 밝힌 이라크 제안을 뚜렷한 명분없이 즉각 거부했다. 부시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워싱턴 보수권의 중동 전략의 지향점이 어디인지를 드러낸 대목이다. 중동의 유전을 탐하는 나라가 비단 어디 미국뿐일까. 공산체제 붕괴 후 순한 양으로 바뀐 듯 하던 러시아의 이라크를 보는 눈길 속에는 먹이를 향한 북극곰의 '야성'이 그대로 살아있다. 당초 이라크 공격을 반대해온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을 지지하는 대가로 후세인 이후 자국의 지분 확보를 꾀하며 미국과 흥정 중에 있다는 것이 최근 공개된 사실이다. 짐작 못할 바 없는 일이지만 세계 지배권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검은 뒷거래는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상황이다. 양과 질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 강대국들의 또 한군데 좋은 사냥터로 떠오른 곳은 바로 동방(東方)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선 나라가 북한이다. 지난달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북한 방문은 최대 우방을 자처하던 미국의 '뒷통수'를 치며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그가 미국에 신고(?)도 없이 평양을 서둘러 방문한 건 무엇보다 다급해진 일본 경제 돌파구 모색이 그 배경이다. 체제 붕괴의 리스크를 감수하며 세계 질서내 편입의 수순을 밟는 북한에 대한 경제적 이니셔티브는 일본으로서 결코 놓칠 수 없는 '패'-그 손익을 계산한 고이즈미에게 우방과의 신의는 그 다음 문제였으리란 건 미뤄 짐작키 어렵지 않다. 북한을 자신이 영향권내에 묶어 두려는 '습성적'팽창주의자 중국. 이를 견제키 위해서도 북한의 존재가 필요한 러시아. 강대국들의 기세 다툼은 신의주 특구라는 메가톤급 뉴스에다 양빈이라는 기묘한 인물의 등장으로 그 구도의 실체가 확연히 드러났다. 김일성 주석의 아들 설 등 하루아침에 세계 뉴스의 초점으로 떠오른 그를 중국이 전격 연행한 것은 북-러간 밀월, 중국을 거치지 않은 개방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란 게 정설이다. 동토의 땅, 북한의 개방을 둘러싸고 지금 세계 4대 강국간 펼쳐지는 물밑 싸움의 형국은 제국주의 시대 근대화에 뒤쳐졌던 국가들을 놓고 벌였던 패권 다툼과 그 본질이 크게 다르?않다. 과거가 영토 확장의 차원이라면 지금은 경제 패권 확보라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신(新) 패권의 시대. 그나마 다행인 건 미ㆍ일ㆍ중ㆍ러 4강대국 모두를 상대하는 북한 줄타기 외교가 전례없이 유연해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의 공격 앞에 전전긍긍하는 후세인 정권보다는 탄력성에서 한수 위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만큼 절박함, 체제 붕괴의 위험성을 감수하는 북한 정권의 막다른 위기감을 반증하는 측면도 물론 있다. ^북한을 둘러싼 동북아 세력의 이 같은 판도 변화가 바로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중차대한 사안이라는 점은 지금 대한민국이 결코 한가로울 수 없는 이유다. 그 역동의 상황 속에 우리 정부가 비장(秘藏)하고 있는 한반도 경영의 마스터플랜은 과연 무얼까. 끝없는 폭로와 추문으로 얼룩진 시국을 보며 국가 운용의 비전과는 너무도 다른 차원의 유치하고 황당한 논쟁으로 지금 우리가 시간을 허비하는 건 아닌지. 역사의 시계가 너무도 빨리 돌아가고 있는 우리 땅 북쪽을 보며 한편으로 떠올리는 근심이다.
홍현종<국제부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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