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이상 조짐… 상상초월 대란 터지나
[저금리 시대 경제 패러다임 바뀐다] 2부 금융 당국의 저금리체제 시나리오"이대로 가면 금융사 일본식 줄도산"… 건전성 관리 고삐 죈다
김민형기자 kmh204@sed.co.kr
10여년 전 일본 보험업계 역마진 못이겨 대거 파산
은행·보험 실적 악화 등 국내 금융업도 이상징후
당국 위기 대비 감독 강화 부실채 비율 축소 등 지시
권혁세 금융감독원 원장은 요즘 틈날 때마다 "저금리ㆍ저성장 시대를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부회의 때는 물론 외부에서 강연할 때, 심지어 사적인 식사자리에서도 저금리 체제에 대처하라는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
금융감독 수장이 이렇게 관심을 갖는 데는 최근의 저금리ㆍ저성장 기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일본 금융회사가 10여년 전 겪었던 '도산의 늪'에 우리 금융회사도 빠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실제 금융 당국은 물론 민간 경제연구소들도 이번 저금리ㆍ저성장 기조는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본다. 과거 오일쇼크ㆍ외환위기ㆍ카드사태 등에 따른 경제위기는 단기간 회복된 반면 이번에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본 금융회사 도산 사태 남의 일 아니다=1997년 일본 보험 업계에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업계 13위인 닛산생명 파산을 시작으로 지요다생명ㆍ다이이치화재 등 내로라하는 보험사 9개가 연쇄 도산했다. 이들은 1980년대 높은 수익성을 내세운 개인연금과 저축성보험 등을 통해 몸집을 불렸지만 저금리ㆍ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역마진이 발생하자 결국 문을 닫았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가 제로 수준까지 떨어지자 보험사의 자산운용수익률이 곤두박질쳤지만 가입자에게는 높은 이율로 보상해주다 보니 대규모 손실이 났던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도 10여년 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연구소들은 내년 경제성장률이 3%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은행은 경기부양을 위해 올 들어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으며 앞으로도 한두 차례 추가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 기준금리 인하로 시장금리는 역사상 최저 수준에 근접해 있다. 여신금리는 2008년 7.17%에서 올해 9월 말 5.13%로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이후 가장 낮다.
일본에서 나타났던 현상이 금융산업 곳곳에서 이미 포착되고 있다. 삼성생명이 10년 만에 경영진단을 받고 있는 것은 이런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은행도 지난 3ㆍ4분기 실적이 전년 대비 40%가량 줄어 올해 실적이 반 토막 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영린 금감원 거시감독국장은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금리조절 실기 등 정책적인 부분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며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위기 넘길 체력 보강 집중 관리…건전성 규제 대폭 강화=금융 당국은 은행ㆍ비은행ㆍ보험ㆍ금융투자 등 각 업권별로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는 체력을 보완하는 데 감독의 초점을 맞출 방침이다.
은행에 대해서는 이미 부실채권 비율을 올해 말까지 1.3%로 맞추라고 지시했고 배당을 자제해 내부 유보 자금을 더욱 늘리라고 지도했다. 보험 부문은 최근 공시이율과 책임준비금 비율을 똑같이 산정하도록 세칙을 개정하는 등 보험금 지급을 위한 보험사의 자금적립 기준을 강화했다.
건전성 규제 강화를 중심으로 위기가 현실화하기 전에 고삐를 최대한 조이겠다는 뜻이다.
금융투자 부문 역시 거래수수료 의존도를 줄이고 채권영업, 투자은행(IB) 등 수익원을 다변화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이와 더불어 금융 업계가 새로운 상품과 자산운용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체력관리와 함께 변화된 경제환경에 유망한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령화 시대에 대비한 보험 및 연금상품, 이머징마켓 등 해외 시장 진출, 장단기 금리 역전 상황을 활용한 신상품 개발 등이 그것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리스크 관리와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상품이 무엇인지 자산운용 전략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쉽지는 않겠지만 국내외 사례를 살펴보고 자체 경쟁력을 분석해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비올 때 우산 뺏지 마라=금융 당국은 금융회사가 생존 위주의 전략을 펼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소비자보호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회사가 살아남기 위해 수익성 위주의 영업전략을 펴면서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거나 불완전판매 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소비자보호 문제는 다음 정부의 금융감독체계 개편과도 맞물려 있는 문제여서 금융 당국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금융 당국은 돈이 안전자산 중심으로 몰려 중소기업ㆍ서민에는 돈이 돌지 않는 신용경색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금융회사가 리스크 관리를 중요시하면 안전자산 위주로 자산을 운용하고 고신용자 중심으로 여신을 해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수현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불완전판매ㆍ광고 등 영업 행태는 물론 소비자고지 의무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자보호 감독을 강화할 것"이라며 "특히 중소기업과 서민 등 경제적 약자가부당하게 손해를 입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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