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에 이어 전세계를 강타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양적완화의 '실탄'이 떨어져가고 있다.
미국과 일본ㆍ유럽 등 선진국은 이미 막대한 재정적자와 '제로' 금리 등으로 경기부양을 위해 내놓을 카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1%에 불과한 기준금리를 낮출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고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경기를 떠받치기 위한 3차 양적완화(QE3)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지만 이것이 사실상 남아 있는 마지막 카드다.
중국이나 인도ㆍ브라질 등 상대적으로 금리 수준이 높은 신흥국가도 재정지출에 제한이 있는데다 인플레이션 압력과 올 들어 잇달아 실시한 금리인하 조치로 슬슬 부양책이 한계점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각국의 경기부양 실탄 소진이 임박한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추가 양적완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한편 이들의 마지막 부양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경우 글로벌 경제가 속수무책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감이 뒤섞이고 있다.
2008년 미국발 리먼브러더스 사태라는 메가톤급 위기와 2009년부터 3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남유럽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과 유럽은 추가 부양책을 내놓기가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미국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정을 쏟아붓고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낮춘 상태이기 때문이다.
회복세를 보이던 경제지표가 올 초부터 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벤 버냉키 FRB 의장을 비롯한 FRB 인사들이 양적완화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는 '군불 때기'에 그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재닛 옐런 FRB 부의장도 6일 추가 완화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완화 정책이 실행되려면 ▦향후 수년간 고용이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경기 하방압력이 매우 높아지고 ▦물가상승률이 2% 밑으로 급락하는 등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물론 시장에서는 이처럼 신중한 FRB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양적완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끝난 2차 양적완화의 효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FRB의 추가 양적완화가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부담을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럽이나 일본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재정위기로 돈 가뭄에 시달리는 유럽이 그나마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부양책은 ECB의 금리 인하나 은행권에 대한 저리자금 대출 정도다. 하지만 지난해 12월과 올 2월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된 장기저리대출이 부양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막대한 자금이 은행권에만 맴도는 유동성 함정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 제기된 만큼 ECB가 작은 부작용으로 경기부양을 기대할 수 있는 대안은 금리 인하 정도라고 볼 수 있다.
ECB가 유로존 경기침체가 뚜렷해진 상황에서도 금리를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은 ECB가 17일 그리스 2차 총선을 앞두고 "마지막 카드를 아껴둠으로써 정책의 기동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경우 이미 오랜 제로금리 정책에 더해 지난해 대지진 이후 피해복구 및 엔고 대응 차원에서 막대한 재정투입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행의 공격적인 국채매입이 '화폐화'라는 지적에 부딪치면서 일본은행의 부양책에는 급제동이 걸린 상태다.
신흥국도 정책 수단에 제한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부터 경기가 눈에 띄게 꺾인 인도의 경우 4월 3년 만에 금리 인하를 단행했지만 물가 압력 때문에 추가 인하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각종 보조금 지급 등으로 재정수지도 신용등급을 위협할 정도로 악화돼 경기 경착륙에 대응할 방도가 사실성 없어졌다.
브라질도 연쇄 금리 인하로 현재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로 떨어진 상태다. 브라질 정부는 올해 내 추가 인하를 예고했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와 같은 공격적인 부양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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