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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없는 성장’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화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 임금경쟁력이 높은 나라로 노동집약 산업이 이전하는 등 국제산업구조가 급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선진국에서도 고용문제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 최대 경제 강국인 미국도 2000년대 이후 심각한 일자리 감소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뒤 경제전문방송인 CNN머니는 부시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5대 과제 가운데 하나로 고용창출을 꼽았다. 최근 미국 실업률은 5%대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2001년 이후 3년 연속으로 전체 일자리 숫자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지난 1920년대말부터 30년대초반까지 허버트 후버 대통령 때 겪었던 대공황 이후 처음이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전체 고용 대비 일자리는 2001년 0.7% 줄어든 데 이어 2002년과 2003년에도 각각 0.1% 및 0.3%씩 감소했다. 2000년 부시 대통령 집권 이후 지난해 9월까지 사라진 일자리는 80만개에 달한다. 90년대 중후반 높은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정보기술(IT) 거품이 사라진 뒤 미국 내 고용시장의 역동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일자리 감소를 IT기업들의 해외 아웃소싱, 즉 ‘오프쇼어링(off-shoring)’ 확산에 따른 것으로 보고 이들 기업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제너럴 일렉트릭, 델 컴퓨터,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 주요 기업이 인도에 대규모 프로그래밍 사업, 고객지원 콜센터 아웃소싱을 결정,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오프쇼어링 반대론자들은 80~90년대에는 저부가가치ㆍ저임금 사무직이나 생산직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된 반면 2000년대에는 소프트웨어 설계자, 프로젝트 매니저 등 고급 사무직 일자리가 미국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포레스터 리서치는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서만 약 40만~50만개의 IT관련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됐으며 2015년까지 미국에서 350만개에 달하는 일자리가 아웃소싱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란 보고서를 내놓았다. 급기야 미국 의회는 지난해 1월 특정 정부기관이 발주한 사업을 낙찰받은 기업의 해외하청을 9월말까지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비록 낙선했지만 존 케리 민주당 대선 후보는 오프쇼어링 기업에게 세금혜택을 줄이고 국내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게는 반대로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기까지 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집권2기 부시 정부는 기업에 대한 대규모 감세 정책을 통해 소비와 생산을 늘려 고용을 늘린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각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기업투자 확대와 수요진작이 정부의 의도대로 이뤄지면 고용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고용 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정부는 이와 함께 근로자 및 학생에 대한 교육을 확대, 양질의 노동력을 육성하는 정책도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업이 원하는 수준의 숙련 근로자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현재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실업자는 35만명에 달하지만 이 지역 기업의 24%는 숙련근로자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신문은 경제학자들이 ‘스킬 갭(skills gap)’으로 부르는 이런 현상이 미국내 고용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부시정부는 자국 기업과 근로자를 지원하기 위해 고강도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호무역 색채가 옅은 공화당 정부지만 재정적자 및 경상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 비난의 화살을 중국을 비롯한 대미 흑자국으로 돌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의 근로자 대량해고를 자유롭게 해 노동시장 유연성을 앞장서 높인 미국. 집권 2기를 맞은 부시 행정부가 고용창출을 위해 문제 어떤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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