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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한나라당의 딜레마

이용웅 정치부장 yyong@sed.co.kr

한나라당이 요즘 조용하다. 아니 조용한 게 아니라 단지 언론의 관심권에서 조금 멀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명색이 제1야당인데 주요 당직자들이 어제 무엇을 했고, 오늘은 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시들한 것 같다. 오히려 10석에 불과한 민주노동당의 일거수일투족이 사람들의 혓바닥 위에서 놀고 있고 재계 사람들도 앞을 다퉈 민노당 실세들을 만나 그들의 의중을 떠보는 시대가 돼버렸다. 여당같은 야당체질 극복
이를 두고 한나라당 사람들이 어찌 원통해하지 않을 것인가. 노무현 정권 첫 1년 동안 서슬이 퍼렇게 정권을 압박하면서 금방이라도 세상을 뒤집을 것처럼 기세를 올리던 상황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져버렸다. 대통령을 쫓아내려고 탄핵까지 했는데 오히려 더욱 큰 권력을 거머쥔 채 돌아온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한나라당 사람들의 심정이 오죽할까. 사실 지난 1년여 동안 한나라당의 대여 투쟁은 네거티브 일색이었다. 대통령 본인은 물론 그 주변의 주변까지 파헤치면서 어지간히도 많은 비리와 야릇한 흔적들을 들춰내는 데 성공했다. 대북송금 특검을 관철시켜 초반부터 기세를 올렸으나 오히려 신흥 권력에 거추장스럽게 달라붙어 있던 구 집권세력의 흔적을 털어내는 데 일조했으며, 측근비리를 다루는 특검도 이뤄내 무척 기뻐했으나 판갈이를 원하는 여권 실세들의 입맛만 맞춰주는 형국이 돼버렸으니 세상 돌아가는 게 참 요상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DJ 정권 5년 동안 야당으로서 산전수전은 물론이고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는 한나라당 사람들은 알고 보니 온실 속의 난초요 어항 속의 금붕어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마침 지난 19일 한나라당의 새 원내대표로 김덕룡 의원이 뽑혔다. 김 대표는 당선 뒤 “여당과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지만 견제할 것은 당연히 견제하면서 야당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로서는 이 대목에서 ‘야당’이라는 말에 문득 시선이 멈춰섰다. “그렇구나, 한나라당은 야당이었구나. 야당이었어!” 기자는 DJ 정권 내내 사석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여당’과 ‘야당’이라는 언어 사용에 혼돈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한나라당은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나라의 ‘여당’이 아니었던가. 지난 6년여의 세월은 한나라당이 제대로 된 ‘야당’이 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국회라도 장악했지만 권력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시달렸던 한나라당이 이제는 입법부와 행정부를 양손에 거머쥔 거대권력과 마주섰으니 ‘왜소감’에 매몰돼 있는 것일까. 비전갖춘 정책정당 돼야
새 원내대표에 뽑힌 김 의원은 자신과 박근혜 대표를 “광야에서 외로이 개혁을 외쳐왔다”고 말했다. 변화를 싫어해서는 안된다며 트레이드 마크였던 흰머리를 검게 물들였다. 박근혜 대표도 ‘상생의 정치’를 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상생의 정치란 입 다물고 조용히 아무 얘기도 안하는 것은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여당이기 때문에 먼저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들이) 잘못할 때는 당연한 의무로 야당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한나라당의 ‘야당본색’을 바라보는 감상은 물론 상큼하다. 권력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과 수치심에 매몰돼 ‘비전’ 없는 ‘대여 투쟁’으로 일관해왔던 한나라당이 권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국민과 함께하는 비전 있는 보수정당으로 거듭나야 함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 너무 길어서는 안된다. 권력은 관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왠만해서는 그들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재 한나라당 안에서 일고 있는 공부열풍이 특별히 눈에 띈다. 그들이 권력을 잃어버린 사실을 직시하고 국민 앞에 다가설 수 있으려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야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남경필ㆍ원희룡 의원 등 20명의 소장개혁파가 주도하는 수요모임은 주요 정책이나 국정 현안을 놓고 연구와 토론을 벌이면서 17대 국회의 새로운 정치실현을 위한 어젠다 설정에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한나라당이 어떤 모습으로 ‘여당 같은 야당체질’이라는 딜레마를 극복해나갈지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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