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2년에 걸쳐 정부지출 가운데 115억유로를 줄이겠다고 합의해 국외 채권단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그리스가 긴축달성 시한을 다시 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는 이를 독일과 프랑스에 요청할 계획이지만 독일이 재정개혁을 원안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자금지원을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 그리스 사태가 다시 격랑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4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안토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가 이달 초 합의했던 정부지출 삭감시한을 당초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내용을 담은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그리스는 오는 2016년부터 시작되는 1차 구제금융 자금상환 일정도 연기해줄 것을 독일과 프랑스에 요구할 계획이다. 사마라스 총리는 다음주 중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차례로 찾아가 이 같은 의사를 전달할 예정이다.
그리스 정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침체의 늪에 빠진 그리스 경제 때문이다. 그리스의 2ㆍ4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동기에 비해 6.2%나 후퇴했으며 올해 연간 성장률도 -7%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리스 안팎에서는 이런 경제상황의 와중에 혹독한 긴축조치가 가뜩이나 무너지고 있는 경제를 파탄 낼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이아니스 무르모라스 그리스 경제 담당 수석보좌관은 "2014년까지 115억유로를 아끼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스 연립정부는 지난 2일(현지시간) 향후 2년간 115억유로의 정부 재정을 절약해 유럽연합(EU) 규정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를 3% 아래로 맞추기로 극적으로 합의했다. 제2당인 사회당의 에방겔로스 베니젤로스 당수는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잔류를 위해 마지못해 동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그리스에 체류하며 긴축이행 정도를 평가하던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국제통화기금(IMF) 등 이른바 트로이카도 합의 직후 협상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하는 등 그리스를 둘러싼 위기감은 한풀 꺾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리스 정치권이 불과 보름 만에 당초 합의내용을 번복해 긴축시한 연장을 요구할 예정으로 알려짐에 따라 그리스를 둘러싼 위기감은 또다시 고조되고 있다.
특히 돈줄을 쥔 독일 집권당에서 그리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독일이 자금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상황이라 파장이 예상된다. 독일 외 국외 채권단도 당초 6월에 지급하기로 했던 312억유로 전달 여부를 트로이카의 긴축이행 보고서를 본 후 결정하겠다고 버티는 상황이어서 긴축시한 연장을 계기로 보고서가 회의적으로 나올 경우 자칫 그리스가 전면적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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