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시각] 우물에 빠진 한국 IT




갑자기 생각났다. 부처님께서 하신 얘기다. 나그네가 벌판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성난 코끼리를 만났다. 죽기 살기로 뛰다가 우물을 봤다. 넝쿨을 타고 밑으로 내려가 몸을 숨겼다. 한숨을 돌린 후 주위를 살폈다. 우물 밑에는 독룡, 벽에는 독사가, 위에서는 검은 쥐와 흰 쥐가 번갈아 넝쿨을 갉아댔다.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그런데 나무 위 벌통에서 꿀물이 입안으로 떨어졌다. 나그네는 코끼리도, 독사도, 쥐도 모두 잊고 달콤한 환상에 빠졌다. 그러다 바람이 불어 꿀통이 흔들리면서 꿀벌들이 나그네의 얼굴과 머리를 쏘아댔다. 하지만 나그네는 독사에 물릴까 봐 꼼짝도 못 했다.

이는 삶에 대한 비유다. 나그네는 중생, 코끼리는 무상(無常), 우물은 생사, 넝쿨은 목숨, 독룡은 죽음, 독사는 육신, 쥐는 밤과 낮, 꿀은 오욕(五慾), 벌은 나쁜 생각을 빗댄 것이다.

직장인도 나그네와 별반 다르지 않다. 생활고라는 코끼리에 쫓겨 회사라는 우물에 뛰어들어 직장생활이라는 넝쿨을 힘겹게 붙잡고 산다.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보면 명예퇴직·정리해고, 위에서는 후배들이 호시탐탐 밀어낼 기회를 엿본다. 괴롭고 불안한 직장생활에 딴생각을 하면 벌 같은 직장상사가 쏘아댄다. 사표를 낼라치면 처자식이 눈에 밟힌다. 꼼짝달싹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월급'이라는 꿀물이 떨어지면 '그래도 월급쟁이가 최고'라며 모든 시름을 잊고 환상 속에 빠진다.



우리나라 정보기술(IT)도 나그네, 직장인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지난 19일 알리바바가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첫날 38% 오르며 시가총액 2,314억달러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를 훌쩍 넘어섰다. 15년 된 회사가 45년 된 회사를 한 방에 앞섰다.

사실 꿀에 취해 현실을 망각한 얘기는 알리바바 때문에 생각났다. 애플·구글 등 미국 기업과 알리바바·샤오미 등 중국 기업 사이에 낀 우리나라 IT 기업들이 오버랩됐던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이라는 코끼리에 쫓겨 신기술 개발이라는 우물에 뛰어들어 신제품이라는 넝쿨을 붙잡았다. 제품판매가 늘면서 살 만했다. 그런데 아래를 보니 미국 기업이 딱 버티고 있고 위에서는 중국 기업이 저가의 신제품으로 시장점유율을 잠식해간다. 살기 위해 뭔가를 해보려고 하면 정부 규제가 꼼짝 못하게 한다. 기존 방식대로 하면 언론 등에서는 변화를 요구하며 쏘아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데 때가 되면 순익이라는 꿀물이 떨어진다. 그러면 '역시 버티는 게 최고'라는 생각을 한다.

다시 나그네 얘기다.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자기 욕망에서 비롯된 괴로움은 다른 사람이 물리쳐 줄 수는 없다. 스스로 욕심을 내려놓고 해탈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변하는 세상에 눈을 뜨고 기존 방식에 대한 집착, 이익이 지속될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껍질을 벗는 혁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도전 외에는 벗어날 방법이 없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