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홍우 편집위원
이어도에 중국 어선이 떼로 몰려와 조업한다고 치자. 언짢지만 방법이 없다. 해양경찰의 단속 의지가 아무리 강하고 감시선이 충분하더라도 대응 수단이 전무하다. 법적으로 한국의 영토에 속하지 않기에 제재할 근거가 없는 탓이다. 지난 1993년부터 협상이 시작돼 2001년 6월부터 발효된 한중어업협정에서는 이어도 주변을 두 나라의 어선이 자유롭게 조업할 수 있는 해역으로 남겨놓았다.
서두에 던진 질문은 가정에 머물지 않는다. 바로 오늘의 현실이다. 이어도 주변에 새까맣게 떠 있는 배들은 조기를 잡는 중국 어선단이다. 한국 어선들은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어종인 갈치를 쫓아 이어도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어장에서 조업하는 경우가 많다. 이어도에 널린 중국 어선은 합법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선택의 결과라는 얘기다.
<이어도의 중국 어선은 불법일까?>
이어도 바다의 현실은 뭍의 현실과 완전 정반대다. 며칠 전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이어도는 수중암초’라고 말했다가 곤혹을 치렀다. 더러는 심 대표를 해양주권을 넘기려는 역적으로 몰아 부쳤다. 심 대표에 대한 비난은 법적으로 부적절하다. 수중암초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제연합(UN)이 정한 국제해양법에 따르면 그렇다. 영토로 인정되는 도서(섬)의 조건인 ‘만조시에도 바다에 잠기는 않는 육지와 유인도’등에 해당되지 않는다. 국제적으로도 스코드라 암초(Scodra Rock)으로 불린다. 일본이 도서로 인정받기 위해 태평양 한가운데 3,000억원을 투입해 조성한 10㎡의 인공섬 ‘오끼노도리’조차 수상 암초 위에 건설됐지만 이어도 해양종합기지는 수심 4.6미터 깊이 수중암초가 기반이어서 도서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제로다.
심 대표에 대한 공박의 이유는 짐작 가능하다. 강정마을 해군기지와 관련이 있다. 해군기지 건설은 중대한 문제가 분명하지만 이어도와 연결은 위험하다. 별개의 사안인 두 가지 문제를 한데 엮으려다가 국익이 저해 받을 수 있다. 중국이라는 분명한 상대가 있기에 그렇다. 자칫 대중협상력을 약화시킬 우려도 없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언론사 편집인 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다. 이 대통령은 ‘이어도 문제는 영토분쟁이 아니다. 해면 4~5미터 아래에 있기 때문에 영토라 할 수 없다’고 거듭 밝혔다. 심 대표의 수중암초 발언과 비슷한 맥락이나 대통령의 언급 자체가 적당하지 않다.
한중 양국의 해묵은 미해결 현안인 이어도 관할권 문제가 불거진 것은 두 가지 재료 때문. 중국 국가해양국 류츠구이 국장의 ‘이어도가 중국 관할해역에 포함되며, 감시선과 항공기를 통한 정기순찰 범위에 포함돼 있다’는 발언을 국내 보수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중국 성토 분위기를 이끌었다.
<대외문제의 국내정치 이용 그쳐야>
문제는 우리만 열낸다는 점이다. 중국은 내심 불만스런 표정을 짓는다. 수년 전부터 반복된 문제가 불거진 데는 한국 내 정치, 총선에 이어도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의심도 보내고 있다. 중국의 공무원 발언이 문제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직책을 지닌 한국 공무원이 대응하면 될 일을 앞으로 진행될지도 모를 협상의 최종결정권자인 대통령이 나섰다는 점이 개운하지 않다. 상대에게 수를 읽힌 마당에 무슨 카드를 마련할 것인가.
이어도 문제는 반드시 중국과 협상을 통해 풀어야 할 사안이다. 한중 양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ㆍ영토로부터 200해리)이 겹치는 지역에 포함된 이어도가 우리 관할이라는 점은 역사적으로나 거리상으로나 명확한 사실이지만 차분하고 냉철하게 협상을 준비해야 할 때다. 영토주권과 해양관할권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도 필요하다. 해양관할권을 마치 영토분쟁처럼 몰아가려는 시도, 수중암초를 섬인양 오인시키려는 의도는 불순하다.
믿고 싶다. 이어도 바다를 중국에 넘기려는 역적도, 세 규합이라는 정치적 계산으로 현실을 오도하려는 무리도, 늘 속기만 하는 바보도 없다고.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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