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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기가 완만한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각국이 그동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시중에 풀어놓았던 막대한 유동성을 회수하는 이른바 '출구 전략'에 들어갈 경우 또 다른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로 유지하면서 투자금이 더 높은 이윤을 좇아 신흥국이나 위기국 국채, 정크본드에 대거 몰려간 상황에서 출구전략으로 금리가 오르면 이 자금들이 일시에 빠져나가면서 금융시장에 대혼란이 예상된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FRB 비둘기파 위원들은 이미 물가 상승, 자산 거품 등의 부작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양적완화(QE)를 조기에 종료해야 한다고 강력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개리 콘 골드만삭스 회장은 24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블룸버그와 인터뷰를 갖고 "막대한 자금이 몰리며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정크본드의 가격이 심각하게 재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집계하는 전세계 정크본드 수익률은 22일 사상 최저 수준인 6.46%까지 떨어졌다.
BoA도 이런 우려에 동참했다. 24일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BoA는 최근 보고서에서 FRB의 출구전략이 실행되는 것과 동시에 1994년 전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것과 버금가는 '채권붕괴(bond crash)'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94년 FRB는 경기 확장세가 확실하다고 판단, 3년간 3%로 묶어둔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듬해 6월까지 미국의 기준금리는 6%까지 올라갔다. 이에 과거 3년간 FRB의 저금리에 따른 자금이 대거 몰려 수혜를 본 멕시코는 일거에 투자금이 빠지면서 결국 1995년 파산 위기를 겪기도 했다.
현재도 자금이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 위기국 국채로도 대거 쏠린 상황이라 이 같은 현상이 그대로 재연될 수 있다. 스페인은 신용평가사 무디스로부터 정크 등급 바로 위의 신용등급을 받고 있음에도 최근 70억유로 규모 국채입찰을 높은 수요 속에서 발행에 성공했다. 포르투갈 역시 2년 만에 5년 만기 중기 국채 발행을 개시해 성공했다. 이와 관련 마이클 하넷 BoA 최고투자전략가는 "FRB로부터 출구전략의 낌새만 보여도 채권붕괴 사태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FRB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FRB가 출구전략을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3일 공개된 지난해 12월 FRB 의사록에 따르면 소수의 FRB 위원은 구체적인 날짜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당장 어느 정도 QE 정책을 거둬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적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도 24일 다보스에서 "미국의 기준금리가 올해 안에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중국도 경기가 회복되는 가운데 물가가 오르고 부동산 시장이 과열될 조짐을 보이면서 지난해부터 이어진 막대한 공공투자를 줄이는 동시에 올해 안으로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성장세가 주춤해져 중국 경제가 상반기에는 선전하겠지만 하반기에는 주춤하는 '상고하저'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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