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과 방송에서는 '씹어먹는다'는 말이 부쩍 많이 나온다. 어떤 분야를 평정했다는 뜻을 강조한 것인데 몇 년 전 등장해 최근 들어 보편화됐다.
스포츠계에서 2015년을 씹어먹고 있는 선수를 꼽으라면 전인지(21·하이트진로)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소속인 전인지는 5월 일본 살롱파스컵에 이어 2주 전 미국 US 여자오픈을 제패하고 26일 한국 하이트진로 챔피언십마저 우승해 한미일 3대 투어 메이저대회를 한 시즌에 모두 우승한 첫 번째 선수가 됐다. 전인지 팬카페 '플라잉 덤보'는 이번 기록을 '덤보슬램'이라고 부른다.
세계랭킹을 11위에서 9위로 끌어올린 전인지는 30일 스코틀랜드 턴버리에서 개막하는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4대 투어 메이저 우승 대기록에 도전한다. 브리티시 여자오픈은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가 공동 주관하는 대회다.
'대세녀' 전인지의 '글로벌한' 2015년은 자연스럽게 김효주(20·롯데)의 2014년과 신지애(27·스리본드)의 2008년과 비교된다. 김효주와 신지애는 올해의 전인지처럼 국내 투어를 지배하는 한편 해외에서도 간간이 우승 소식을 전하며 필드를 씹어먹었다.
먼저 김효주는 지난 시즌 KLPGA 투어 23개 대회에서 5승을 올렸다. 4~5번에 한 번꼴로 우승이 터졌다는 얘기다. 승률로 따지면 21.7%. 5승 중 메이저만 3승이다. 국내에서만 상금 12억800만원을 벌어들인 김효주는 LET와 LPGA 투어가 공동 주관하는 9월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으로 올해 LPGA 투어 정식 멤버가 됐다. LPGA 투어 4개 대회 상금 67만9,025달러(약 7억9,200만원)를 더해 2014시즌 국내외에서 총 20억원을 쓸어담았다. 지난 19일 지쳐 쓰러져 기권했던 전인지가 26일 국내 투어 메이저인 하이트진로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것처럼 김효주도 지난해 감기를 앓으면서도 메이저대회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서 역전 우승했다. 김효주는 그러나 지난해 일본 투어 우승 기록은 없다. 4월 야마하 레이디스 오픈 출전이 유일했는데 단독 10위로 마쳤다. 26일 하이트진로 대회를 전인지에 4타 뒤진 공동 4위로 끝낸 김효주는 27일 오후2시께 브리티시 여자오픈이 열리는 영국으로 떠났다.
전인지는 김효주의 KLPGA 투어 5승과 메이저 3승, 상금 기록 모두를 올 시즌 깰 가능성이 있다. 김효주의 12억800만원은 KLPGA 투어 역대 한 시즌 최다 상금. KLPGA 투어 소속 선수가 국내외 투어에서 벌어들인 상금도 김효주의 20억원이 최다 기록이다. 올 시즌 국내 투어 4승(13개 대회 출전·승률 30.7%)으로 7억1,900만원을 모은 전인지는 미국 5개 대회에서 84만달러(약 9억8,100만원)를 더 벌었다. 일본 투어 2,400만엔(약 2억1,000만원)을 더한 상금 총액이 벌써 19억1,000만원이다. 국내 투어 전반기에 이미 7억원을 넘겼으니 12억800만원 돌파도 가능해 보이며 국내외 상금 총액 20억원 돌파는 시간문제다.
신지애의 2008시즌을 넘어설지도 관심이다. 전 세계랭킹 1위 신지애는 당시 KLPGA 투어 15개 대회에서 7승(승률 46.6%)을 올리고 LPGA 투어에서 브리티시 여자오픈 포함 3승을 거뒀다. 일본 투어는 1승. 당시 KLPGA 투어 대회 상금 규모는 요즘처럼 크지 않아 신지애의 국내 투어 시즌 상금은 7억6,500만원 수준이었다. 국내 투어만 놓고 보면 9승을 휩쓴 2007시즌이 더 위대했지만 그때는 미국이나 일본 투어 우승이 없었다. 올 시즌 한미일 투어에서 6승을 챙긴 전인지는 신지애의 11승에 도전한다. 전인지는 최근 1주일 사이 기권과 우승을 차례로 경험하며 컨디션 난조에도 스코어를 지키는 법을 터득한 듯하다. 남은 시즌에도 미국과 일본 투어에 초청선수로 자주 출전할 계획이라 지금의 물오른 기량이라면 11승 돌파가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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