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오늘의 경제소사/4월20일] <1374> 카르티에의 항해


1534년 4월20일, 프랑스 서부 항구도시 생 말로. 60톤짜리 범선 두 척이 열렬한 환호 속에 항구를 떠났다. 프랑스가 신대륙 진출을 위해 공식적으로 구성한 첫 탐험선단의 리더는 원양항해가로 이름 날리던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ㆍ당시 43세). 생 말로 대주교의 전폭적인 후원과 국왕 프랑수아 1세의 특별하사금 6,000리브르까지 받아 든 카르티에의 항해는 순조로웠다. 순풍을 타고 뉴펀들랜드 지역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20일. 콜럼버스가 스페인을 출항해 신대륙을 밟기까지 소요된 70일보다 훨씬 짧은 것은 물론 초기 증기선의 대서양 횡단기록과 맞먹을 만큼 경이적인 속도였다. 순항에 고무된 카르티에는 탐험의 목적인 중국 왕궁을 쉽게 찾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눈앞에는 반라(半裸)의 원주민만 나타났다. 황금이라고 믿었던 반짝이는 돌도 운모(雲母)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카르티에는 원주민 추장의 아들들을 붙잡아 프랑스로 돌아왔다. 산림이 우거지고 어족이 풍부한 새로운 대륙에 관심이 생긴 프랑스는 카르티에를 다시금 내보냈다. 3척의 선박으로 2차 탐험에 나서 겨울까지 지낸 그는 중국으로 가는 뱃길도, 금과 은의 발견에도 실패했지만 미국과 캐나다 제조업 발전의 젖줄이었던 세인트 로렌스 수로를 찾아냈다. 캐나다라는 지명도 그의 2차 탐험에서 나왔다. 강을 타고 북상하던 그의 일행이 가는 곳을 이로쿼이족 원주민들이 ‘카나타(Kanataㆍ마을이라는 뜻)’라고 부른 데서 비롯됐다. 몬트리올이라는 지명도 카르티에가 이름 붙인 ‘국왕의 산(몽 레알)’이 변한 것이다. 카르티에는 3차 탐험에서도 원했던 성과를 이루지 못했으나 캐나다에 프랑스 문화의 씨앗을 뿌렸다. 비록 원주민들을 철저하게 이용한 뒤 배반했지만.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