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근대사는 과연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그 동안 학계에서는 17~18세기에 실학이 도입되면서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했으며 이를 기점으로 중세에서 근대로 서서히 넘어갔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일본의 조선사 연구의 권위자인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는 개항기 때부터가 아니라 16세기 조선시대부터 근대가 시작됐다며 기존 학설에 반박한다.
우선 한ㆍ중ㆍ일 동아시아 3국의 근대는 소농을 기반으로 한 사회라는 점을 꼽았다. 중세 유럽의 영주 계층이나 무굴제국 시기 인도의 자민다르(페르시아어로 '토지소유자')와 달리 소농에 대비되는 거대한 토지 귀족이 없다는 점을 동아시아 근대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농사회론은 '고대-중세-근대'라는 시대 구분을 무너뜨린다. 자연히 서구 사회에서 근대의 이행 전 단계인 봉건제가 동아시아에는 없었다는 '봉건제 부재론'으로 귀결된다. 고대, 중세, 근대라는 3분법은 철저히 서구적 분류법인데, 그 동안 동아시아 근대의 기준으로 아무런 고민 없이 고스란히 베껴왔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저자는 주자학을 동아시아 근대의 핵심 사상으로 보고 있다. 사회의 토대인 소농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볼 때 주자학은 세계사적으로 비교해도 가장 선진적인 이론 체계로 종래 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학계의 일부 시각에 대해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조선시대를 봉건사회로 보고 조선후기를 봉건제 해체기로 파악하는 한국 주류학계의 내재적 발전론에 대해 비판적이다. 한국의 근대는 19세기 개항 때부터가 아니라 소농사회가 형성되는 16세기부터라고 봐야 한다는 논리다. 저자는 "얼핏 보면 시대와 지역에 상관 없이 소농사회는 극히 보편적인 존재로 생각되지만 17~18세기 동아시아처럼 소농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는 오히려 예외적"이라고 주장한다. 소규모 자급자족농민들이 밀집해 있던 동아시아는 대규모 부농 중심의 서구와는 다른 형태의 사회였으며 그래서 근대화의 길도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 비교를 통해 토지소유와 국가체제, 신분제, 지배계층, 가족과 친족 등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한국의 역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밝힌다는 데 있다. 2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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