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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라이브의 여왕 '이은미'

"나는 연예인 아닌 진지한 음악가예요"



[리빙 앤 조이] 라이브의 여왕 '이은미' "나는 연예인 아닌 진지한 음악가예요" 우현석기자 hnskwoo@sed.co.kr 관련기사 >>리빙 앤 조이 기사 더보기 • 구멍위로 솟구치는 손맛 '얼음낚시' • 얼음낚시 장비 구입요령 • 지역별 얼음낚시 축제 • 가볼만한 얼음낚시터 • 아름다워 더 서글픈 제주 '모슬포' • 이영근 평화박물관장 인터뷰 • '비구면 렌즈 삽입술' 첫 선 • 라이브의 여왕 '이은미' • [호텔 나들이] 롯데호텔제주 外 이은미를 취재 하려고 처음 마음을 먹었던 것은 지난해 10월 이었다. 평소 이은미가 진지한 가수라는 이야기를 들어온 터라 매니저에게 연락을 해서 11월에 약속을 잡았는데 인터뷰 전날 이은미 측에서 약속을 펑크 내고 말았다. “미안하다”며 “다시 날을 잡아 연락을 하겠노라”던 이은미 측에서는 한 달이 넘도록 감감 무소식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니 마지막으로 전화나 한 번 더 해보자고 연락을 했는데 이 번엔 수월하게 연결이 됐다. 가수 인터뷰가 처음인 기자는 만나기로 약속한 공연장으로 가는 중에 ‘인터뷰 대상을 과연 제대로 고른 것일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무엇 보다 기자가 대중 음악쪽에는 문외한이라는게 마음에 걸렸고, 두 번째로는 이은미가 가수라는 직업에 대해 어느 정도의 성찰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 같은 정보의 부재는 불안감을 부채질 했고, 그 불안은 쉬 가라 앉지 않았다. 약속 시간 보다 10분 앞서 도착한 대기실에는 무대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이은미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음향기기에 문제가 있는지 이은미는 날이 선 목소리로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6시가 되자 문을 열고 대기실로 들어섰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국내 가수중 라이브 공연 횟수가 가장 많다고 올라와 있던데 맞습니까. ▦글쎄요. 모르겠어요. 이미자 선배 같은 분들도 계신데 제가 한 공연이 더 많았을까요. -그럼 데뷔 19년째인 것은 맞나요. ▦데뷔 시절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솔로 앨범을 출반한 때부터 따지면 92년이고, 신촌블루스 활동 때 부터로 보면 88년에 데뷔한 셈이지요. 하지만 신촌 블루스 시절에는 객원 보컬이었기 때문에 솔로 앨범을 낸 시점을 출발점으로 보는게 옳을 것 같네요. -공연은 1년에 평균 몇 차례나 합니까. ▦음반 준비하느라고 올 해에는 별로 못했어요. 충무아트홀 공연이 처음이었으니까요. 대략 30번 정도? 2002년 500회 공연을 했으니까 600회는 넘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공연의 횟수 보다는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언제 했던 공연인가요. ▦공연에 관한 기억을 마음 속에 오래 담아 두지는 않는 편이에요. 한 가지를 마음에 오래 담아두면 그 이상이나 그 이하에 대한 기억은 견디기 힘들거든요. 사람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심정은 이해는 하지만 그런 생각은 빨리 지워 버리는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매번 공연을 할 때 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토해내 버려요. 흔히 ‘라스베이가스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지 않느냐?’고들 하는데 라스베이가스 라고 해서 특별히 기억되거나 소극장이라고 해서 빨리 잊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면 ‘겸손 떤다’고 하는데 정작 무대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내가 만족한다고 해서 관객이 만족한다는 보장은 없는거 잖아요. 공연은 살아 숨쉬는 생물 같아서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그냥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요. -TV에서 보기 힘든데 혹시 일부러 출연을 기피하는 건 아닌가요. ▦데뷔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왜 TV에서 볼 수 없느냐?’는 질문을 수 천번은 더 받았어요. 시청자나 팬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지만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출연하고 있어요. 다만 저는 연예인으로 살기 보다는 음악가로 살기를 원해요. 다시 말해서 저는 남을 웃기는 재주도 없거니와 원치 않는 오락 프로에 나가서 번지 점프를 하거나 노래 몇 소절을 불러서 얼굴을 알리고 싶지는 않아요. 기자는 이은미의 이 같은 고집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이은미가 그저 다른 가수들 처럼 TV나 라디오에 나와서 우스갯 소리를 하거나, 만능 엔터테이너로 통칭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연예인이었다면 애초에 취재를 하러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노래는 어려서부터 잘 불렀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노래를 잘 부른다는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보컬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굳이 가수가 된 동기를 꼽으라면 노래를 듣는 걸 좋아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듣다가 따라 부르기 시작한 거지요. 음악을 듣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 부터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몇 년 지나서에요. -가수는 기본적으로 재질을 타고 나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재질이 있는 사람이 수월하겠지요. 저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재능을 타고 나지 않았으면 여기까지 못 왔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노래를 업으로 삼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87년에 신촌에 있는 어느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처음 불렀어요. 아는 선배가 ‘너 노래에 소질이 있다’고 치켜 세워 줬는데 정작 저 자신은 그걸 믿지 못했어요. 그 선배가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한 번 해보라고 해서 했는데 기립 박수를 받았어요. 그래서 ‘나도 노래에 재능이 있나 보다’ 생각을 하게 된거지요. -‘맨발의 디바’라는 별명이 붙은 건 맨발로 무대에 오르기 때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맨발로 무대에 오르는 이유가 뭔가요. ▦그건 이미 수 십번 한 이야기인데. 인터뷰 준비를 안 하고 오셨군요. 이은미는 기자의 질문이 딱하다는 듯 면박을 줬고, 기자는 그런 이은미의 태도가 어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맨발의 이유를 알 턱이 없는데다 나 또한 그걸 알아야 할 의무가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평소 취재원에 대한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덜렁대고 인터뷰를 하러 가는 부류들을 경멸해 오던 기자로서는 그런 이은미의 추궁이 황당하고 무례하게 느껴졌다. -인터넷 검색은 해보고 왔어요. 모 통신사의 기사로는 95년에 처음 맨발로 무대에 올랐다고 하더군요. ▦그건 오보에요. 93년 마당세실 공연 때부터 신발을 벗고 공연을 했어요. 처음엔 음반 레코딩을 할 때 신발을 벗고 하기 시작했는데 세실극장 공연 때 11일 동안 하루에 두 번씩 무대에 올랐어요. 너무 무리해서 무대에 오르다 보니 닷새 만에 목소리가 잠겼어요. 그 날 공연을 위해 분장을 하다가 거울을 봤더니 거울 안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어요.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는데…. 너무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욕심이 가득한 사람이 거울 안에 앉아 있는 걸 보니 ‘내가 표현 하고자 하는 것 보다 너무 많은 걸 원했나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유로워지고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맨발로 올라 갔어요. 목소리는 안나왔지만 무대는 편했어요. 하지만 요새는 다시 신발을 신어요. 그 이유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허울에 내가 갇혀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나를 규정 짓는게 싫었기 때문이에요. -가수들의 립싱크를 비판한 게 2001년이었습니다. 당시 비판했던 가수의 팬들이 이은미씨 홈페이지에 악플을 달기도 했지만, 은미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 때 했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2001년에 그 문제를 이슈화 하려고 얘기했던 것이 아니라 데뷔 전에 선배들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어왔어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얘기한 것 뿐이에요. 데뷔 때부터 지적을 한 건데 그 때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없었으니까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지요. -파장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원인은 그런 상황을 자초하는 아이들(이은미는 립싱크를 하는 가수들을 이렇게 불렀다.)에게 있어요. 연예인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 립싱크를 하는 아이들이 많으니까요. 그런 아이들을 쇼 비즈니스 바닥에 내놓아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 아니에요? 시청자들이 10대가 나와서 섹시 웨이브 춤 추는 걸 보고 싶겠어요? 쇼 비즈니스의 행태고 자본주의의 병폐겠지요. -기획사들의 책임도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 현실과 타협해서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면 내가 던 편했겠지만 그걸 할 수 없을 정도로 못 나서 이렇게 살고 있어요. 이은미는 이 사회에 내포(內包)된 부조리에 강한 적의를 품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부조리에 맞서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취재를 하고 있는 이 순간 그녀의 적의는 그녀가 제도권 언론이라고 생각하는 기자를 조준하고 있었다. -관객 13명을 놓고 공연을 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7,000석 공연장이 꽉 찬다고 하는데 그 옛날과 지금을 비교하면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치 않은 것은 무엇인가요. ▦관객의 숫자와 상관없이 가수가 공연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지금은 그 때 보다 무대에 서는 자체를 즐긴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관객이 많고 적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관객의 숫자에 따라 내가 흔들리지는 않으니까요. 내가 담대해서 그런게 아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음악가의 자세라고 배웠어요. -지난해 국내 가수중 처음으로 라스베이가스 힐튼호텔 초청 공연을 했습니다. 그 공연은 어떻게 성사됐나요. ▦LA와 샌프란시스코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LA한국일보 쪽에서 힐튼호텔 관계자에게 내 공연 DVD를 보여줬더니 공연을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해서 성사됐어요. -창작 곡도 많지만 리메이크 곡도 많이 부르는 편인데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남의 곡을 많이 부르는 편은 아니에요. 다만 남의 공연을 볼 때 레퍼터리가 똑 같으면 지루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그런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어요. 다시 말해 팬들에게 공연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는 얘기지요. 예전 공연이나 지금 공연이나 달라진게 없다면 되겠어요? 최선을 다해 다양한 표현을 하기 위해서 리메이크 곡을 부르는 거지요. -리메이크 곡을 부르는 것을 들으면 해석이 좋은 것 같은데 특별한 비결이 있습니까. ▦나도 그 곡들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 있어요. 또 그 음악의 장점을 파악하거나, 평가하면서 장점을 살려 나가려고 해요. -아직도 무대에 서기 전에 긴장되십니까. ▦당연하죠. 오늘로 공연이 8일짼데 목이 정상이 아니에요. 게다가 나는 긴장이 심하면 구토를 하기도 해요. 다른 사람들은 공연이 끝나면 외롭고, 허탈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어요. 난 항상 최선을 다 하고 모자라는 것은 그대로 받아 들여서 고치려고 할 뿐이에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 봅시다. 음원(音原)유통 구조에 불만은 없습니까. ▦가수들의 주 수입은 이동 통신사들이 휴대폰 벨소리 등으로 사용하는 음원 사용료인데 이통사들이 가져 가는 지분이 너무 많아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분배 구조가 합리적인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그런 걸 왜 나를 통해서 이야기 하려고 하지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 기사를 써서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기자를 향해 찔러 오는 이 여가수의 논리는 예리했지만 태도는 처음 보다 우호적이었다. 그래서 기자는 “가요나 음악은 내 출입처가 아니라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며“다만 이 질문은 오늘 인터뷰를 위해 준비해 온 것”이라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답했다. 대화 내내 이은미를 향한 기자의 질문과 튕겨져 나오는 대답이 피곤하게 엉켜 돌아갔다. 인터뷰를 끝내고 일어서자 이 가수는 기자에게 자신이 엮은 시집과 CD에 사인을 해서 건넸다. 전의(戰意)가 가신 여인의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다. #이틀 후 공연장에서 기자는 이은미의 CD 두 장과 라이브 공연 DVD타이틀 한 장을 가지고 있었다. 취재 후 받은 CD를 합치면 모두 4장이었는데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4장에 수록 된 모든 곡을 다시 들었다. 기사를 쓰기 전에 아무래도 라이브를 봐 놓아야 할 것 같아서 이틀 만 다시 공연장을 찾았다. 이은미는 공연에 앞서 관객들에게 “300석 규모의 작은 극장에서 공연을 한 것은 5년 만에 처음”이라며 “대극장에서는 실수를 숨길 수 있는데 소극장에서는 그게 불가능 하지만 관객들을 가까이 느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트롯 곡 ‘무정블루스’를 불렀다. 공연장에는 의외로 중년 관객들이 많았다. 그녀의 열창에 옆자리의 여성 관객은 “저렇게 목을 혹사해도 괜찮을까”하고 걱정을 하기도 했다. 공연이 끝날 쯤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감정이 격해진 이은미는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다. 기자는 이 여자 가수의 뜨거운 열정에 공감했고, 예민한 감수성이 부러웠다. ◇이은미는? ▦88년 다운타운에서 노래시작 ▦89년 신촌블루스 3집 참여 ▦92년 1집 '기억속으로' 발표 ▦93년 2집 '어떤 그리움' 발표 ▦97년 3집 '자유인' 발표 ▦97년 아시안송페스티벌(Asian Song Festival) 한국대표로 참가 ▦98년 4집 'Beyond Face' 발표 ▦98년 히로시마 세계 음악제 한국대표로 초청 참가 ▦99년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출강 ▦2000년 Remake Album ‘Nostalgia’ 발표 ▦2001년 5집 'Noblesse' 발표 ▦2002년 공연실황 DVD 발표 ▦2002년 Best Album ‘Passion’ 발표 ▦2002년 이은미 500회 공연기념 콘서트 ▦2002년 문광부 장관상 ‘오늘의 예술가상’ 수상 ▦2005년 6집 ‘ma non tanto’ 발표 ▦2006년 국내최초 라스베가스 힐튼호텔 초청 공연 ▦2007년 리메이크 앨범 ‘Twelve songs’ 발표 입력시간 : 2008/01/1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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