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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의 창조경제 드라이브에 힘입어 벤처투자자금이 늘어나고 있지만 주된 엑시트(투자자금 회수) 수단이 돼야 할 M&A는 여전히 저조한 모습이어서 한국 벤처생태계가 취약성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벤처캐피탈 회수 비중 가운데 M&A가 차지하는 비중은 단 0.9%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난 2009년 7.1%를 기록한 뒤 급감해 지난해에 이어 2년째 1%를 밑돌고 있다. 유럽 91.3%, 미국 85.5%, 이스라엘 83.3%가 M&A를 통해 자금회수를 하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는 벤처기업 302개사와 벤처캐피털 5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벤처기업들은 기업상장(IPO)에는 긍정적이지만, 인수합병(M&A)에는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고 발표했다. 대기업이나 다른 기업이 M&A를 제의하면 검토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절반 이상(51.7%)이 M&A보다 자체성장을 택하겠다고 답했다. 또 벤처캐피털의 66%가 선호하는 투자금 회수방법으로 상장을 꼽았으며, M&A라고 답한 곳은 20.0%뿐이었다.
이처럼 M&A에 대해 한국 산업계가 소극적인 이유는 자금력있는 대기업이 문어발 확장 등 비판여론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부터 지난달까지 총 12건의 기업 인수와 투자를 진행했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국내 벤처기업은 전무하다. 올 들어 인수한 쉘비TV(캐나다)·스마트씽스(미국)·콰이어트사이드(미국)·프린터온(캐나다) 등 모두 해외 벤처기업이었다.
이와 관련, A벤처캐피털 대표는 "인수기업의 법인세 감면 등 세제혜택을 줘도 대기업의 M&A를 바라보는 국민 정서 자체가 부정적이다 보니 대기업으로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일관할 수밖에 없다"며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내 대기업들이 제대로 값을 치르고 벤처기업을 인수하는 사례를 늘려나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벤처기업인들이 '회사는 내 것'이라는 소유욕이 강해 쉽사리 기업을 매물로 내놓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성장가도를 달리는 등 소위 잘 나가는 시점에는 전혀 회사 매각을 고려하지 않다가 사세가 기울었을때 회사를 내놓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 B벤처캐피탈 부사장은 "사업이 잘 되는 회사일수록 지분 유치, 즉 투자를 받으려 하지 회사를 매각하려 하지 않는다"며 "이같은 '내회사 주의'가 기업 성장을 더디게 하고 벤처생태계를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대기업들이 기업 인수 등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 기술탈취·인력 빼가기 등 불공정행위를 통해 중소·벤처기업의 핵심역량을 싸게 얻으려는 행태도 M&A를 막는 원인으로 풀이된다. 일례로 서오텔레콤은 "LG전자 상품기획팀의 기술 설명 요청으로 특허자료를 넘겨줬더니 1년 뒤 특허 기술과 동일한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 나왔다"며 LG전자와 다툼 중이다. 이민화 KAIST 교수는 "M&A가 안 되는 것은 대기업이 인력을 빼가거나 기술을 베껴도 큰 문제가 안되기 때문"이라며 "불공정거래와 특허침해에 대한 처벌이 약하고 관련 기관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벤처기업의 M&A를 바라보는 이중적인 잣대도 벤처간 합종연횡을 막는 요인이다. 박지영 컴투스 창업자, 신현성 티켓몬스터 창업자 등과 같이 유망주로 떠올랐던 벤처기업 CEO가 지분을 매각했을 때마다 불거지는 '먹튀' 논란이 대표적이다. 그러다 보니 벤처캐피털이나 벤처기업계에서도 M&A를 꺼릴 수 밖에 없다.
창업기업을 구글·탭조이 등 해외 대기업에 매각한 바 있는 노정석 파이브락스 창업자는 "실리콘밸리 모델이 성공한 이유는 벤처캐피털이나 창업자가 M&A를 통해 초기 투자금을 회수하고 다시 창업하는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라며 "M&A를 통한 벤처기업의 회수(엑시트) 사례가 많지 않다 보니 국내에서는 여전히 기업을 매각하는 CEO나 투자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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