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가들이 투자자 이익을 위해 제 목소리를 내야 할 주주의결권 행사에 여전히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의결권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대형 운용사 중심으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어 문제성 안건이 부결되는 경우는 더욱 희박해졌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24일 '2014년 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 현황'을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개최된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행사 내역을 공시한 82개 민간 기관투자가의 반대율은 1.4%에 그쳤다. 총 1만8,186개의 안건 중 260개의 안건에만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는 지난 2013년 0.9%보다 높아졌지만 3월 국민연금 반대율 9.4%나 지난 상반기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반대권고율 18.7%에 비해 여전히 낮다는 평가다.
특히 중소형 및 외국계 기관 중심으로만 의결권 행사가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의결권이 상대적으로 많은 대형 운용사들의 부진한 의결권 행사로 안건이 부결될 확률도 낮아졌기 때문이다.
실제 82개 기관투자자 중 1건이라도 경영진 안건에 반대한 곳은 22개사뿐이었고 73.2%에 해당하는 나머지 60개사에서는 단 1건의 반대도 없었다. 전체 경영진 안건 253건에 대한 반대 중 71.5%인 181건이 4개 기관투자가에 의해 이뤄졌다. 또 반대 건수 상위 10개사 중 1개사가 독립계 기관투자자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었고 나머지는 9개사는 베어링자산운용과 JP모건자산운용코리아 등 외국계였다. 대형 운용사 중 삼성자산운용·한국투자신탁운용·신한BNP파리바 등은 올해 상반기 단 한 건도 반대표를 행사하지 않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KB자산운용은 반대표를 행사했지만 각각 단 1건에 지나지 않았다.
대형 운용사들을 중심으로 의결권 행사에 소극적인 이유로 투자자 이익보다는 사업 관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관계자는 "국내 기업집단과 국내 금융그룹에 속한 기관투자가의 경우 소유 관계 또는 사업 관계로 인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러한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독립계 기관투자가나 외국계 기관투자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운용업계 관계자도 "현실적으로 운용사들의 경우 독자적인 의결권행사가 보장되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비즈니스 관계에 얽혀있는 기업의 경우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쉽지 않다"며 "운용사 입장에서 투자자 이익도 중요하지만 상대 기업과의 거래 관계에 더 높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회사가치 제고와 주주권익 보호를 위해 의결권을 충실하게 행사해야 하는 기관투자자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규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독립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며 "자문기관을 활용하는 등 의결권을 전담하는 인프라를 확충하고 의결권 행사 관련 정보를 미리 공개해 운용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또 "현재 포괄적으로 나와 있는 의결권 행사 지침을 구체화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운용사 관계자도 "의결권 행사시 내부 의결권행사위원회를 거쳐서 행사여부를 결정하고, 선관주의의무(선한관리자의 의무)에 따라 펀드 수익자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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