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독일로 자금이 대거 몰리면서 시작된 일부 국채의 '마이너스 금리' 현상이 유럽 각국으로 확산되면서 투자손실을 초래하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처를 찾는 자금이 세계 곳곳의 신흥국들로 향하고 있다. 한동안 위험자산을 기피하느라 신흥국 시장에서 대거 빠져나간 자금이 더 이상 선진국 투자로는 수익을 낼 수 없게 되자 지금까지 관심을 두지 않던 개도국 국채로까지 투자의 보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신흥국 채권금리 최저 수준 하락=13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신흥국 자국통화 채권 벤치마크인 JP모건 이머징 로컬마켓 인덱스플러스(ELMI+)는 지난 5월 이후 4.4% 상승, 한동안 미국과 독일 등 탄탄한 안전자산으로 쏠리던 글로벌 자금이 다시 신흥국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음을 나타냈다. JP모건에 따르면 올 들어 신흥국 채권 펀드로 유입된 자금은 460억달러에 달해 지난해 연간 유입액인 430억달러를 가뿐히 넘어섰다. 최근 일부 신흥국들의 통화방어 움직임은 글로벌 자금 흐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신흥국 채권수요가 늘어나면서 과거 채권투자가들의 관심권 밖에 있던 신흥ㆍ개도국의 국채금리는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국채 가격 상승) 상태다. 통상 6%를 웃도는 수준에 머물던 멕시코의 10년만기 국채 수익률은 7월21일 4%대까지 하락했으며 이후 소폭 반등에도 불구하고 13일 현재 5.3%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9년물 국채 수익률도 올 3월 8%를 웃돌았으나 8월 현재 6%대 중후반에서 움직이고 있다. 동아프리카 최대 경제국인 케냐의 경우 국채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하락해 중앙은행이 18개월 만에 처음으로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케냐 10년 만기 국채의 유통수익률은 6월 발행 이후 1.57%포인트 하락해 지금은 12.63%로 최저치에 머물고 있다. 이 밖에 우간다 국채금리도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확산되는 마이너스 금리…월가는 분트 이탈 움직임도=한동안 신흥국 시장을 외면하며 브라질 등 일부 국가의 통화가치 폭락을 초래하던 국제 투자자금이 이처럼 신흥국으로 'U턴'하고 있는 것은 안전자산의 투자 리스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독일 국채에서 시작된 '마이너스 금리'라는 기현상은 지난달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하 이후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ㆍ핀란드ㆍ덴마크 등으로 확산, 이들 국가의 2년 만기 국채가 속속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면서 투자자들이 인식하는 안전자산의 범위가 기존의 미국ㆍ독일 국채에서 유럽의 주변 국가들로 확산된 탓이다. 지난해 한때 위기설이 돌기도 했던 프랑스의 10년물 금리는 지난 1일 2.01%까지 하락하면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편 이처럼 비정상적인 마이너스 금리가 지속되자 일각에서는 분트(독일 국채) 등 이른바 '안전자산'에 대한 거품론이 제기되면서 자금이탈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블룸버그는 유로존 위기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는 독일 국채를 이미 월가가 처분하기 시작했다며 피델리티와 핌코 등 채권투자의 큰손을 비롯해 BNP파리바ㆍ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ㆍ바클레이스 등도 분트 매각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메릴린치웰스매니지먼트 관계자는 "독일이 유로존 추가 지원을 위해 국채를 더 발행할 위험이 존재한다"며 "제로 수익률 채권(분트)에 투자하는 데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선진국 금융완화로 신흥국 자금유입 지속 전망=이처럼 안전자산의 투자가치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글로벌 경기 둔화가 가속화할 경우 각국의 금융완화 조치로 풀린 유동성이 지속적으로 신흥국 등으로 유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신흥 경제국의 통화가치가 다시 지난해의 고점 수준에 육박하면서 수출의존도가 높은 이들 신흥국 경제를 압박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일부 국가의 경우 최근 자금유입으로 통화가치가 급등하자 시장개입 카드를 만지작거리거나 외환 규제조치를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경기방어를 위해 3차 양적완화에 나서 대규모로 풀리는 유동성이 적정 수익을 찾아 신흥국으로 계속 몰려갈 경우 수출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신흥국의 통화방어 움직임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홍콩 소재 크레디아그리콜의 프란시스 청 스트래티지스트의 말을 인용, "선진국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금융완화에 나서면서 신흥국 통화가치 절상압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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