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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탤런트를 춤추게 하라] <1부-2> 연봉 100억원의 모순

내부 견제·질시에 '스타 탄생'은 아직 요원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경영진의 조급증과 동료 직원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내기가 힘겹습니다.” 5년 전 엄청난 연봉과 성과급을 받고 국내 재벌그룹 주력 계열사에 영입돼 주위의 부러움을 샀던 L연구위원(상무급)은 지금 남모를 고민에 빠져 있다. 그가 서울경제 취재팀에게 털어놓은 최근의 심경은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는 것.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스타급 인재’로 분류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L연구위원에게 시련이 찾아온 것은 지난해 말. 그가 정열을 쏟으며 연구 중이던 프로젝트(오는 2010년까지 완료 목표)를 회사가 중단하기로 결정한 시점이다. 그는 “(프로젝트가 중단되자)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월급도둑으로 보는 듯한 직원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기 힘들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못난이 3형제의 질투=국내 대기업에 근무하다 퇴사한 후 취리히공대 박사과정을 끝내고 노키아 본사에 입사한 김성준(38)씨. 김씨는 “한국의 인재는 조직 내에서 ‘못난이 3형제’의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못난이 3형제란 ▦단기성과주에 빠진 경영진 ▦연공서열에 목매는 중간간부 ▦획일화된 젊은 직원들. “경영진은 핵심인재에 대한 대우를 해준 만큼 당장이라도 새로운 제품이 나와 수익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합니다. 중간간부들은 성과급, 팀제 등 바뀐 조직문화에 적응하느라 동료나 부하직원에 대해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행여 부하직원이 치고 올라올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눈꼴실 정도입니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인재’를 스카우트해도 이들이 뿌리를 내릴 때까지 참지 못하거나 이들이 착근할 때까지 도와줘야 할 중간간부들이 오히려 ‘견제와 질시’를 보내고 있다는 의미다. 김씨의 이어지는 말은 이렇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입사원부터 강요되는 획일화된 기업문화입니다. 같은 대학, 같은 성적으로 입사를 해도 기업 문화에 따라 3년 내 A급 인재와 D급 인재로 차이를 나타내기 마련이지만 국내 현실에서 이를 인정하는 곳은 사실상 전무합니다.” 한마디로 콩나물 시루 속의 콩나물처럼 대접받는 것 자체가 싫었다는 이야기다. 김상국 경희대 교수는 이에 대해 “핵심인재란 조직전체의 미래성장기반을 확보해줄 능력이 있느냐의 여부”라며 “기업이나 조직의 사정에 따라 단기성과가 몹시 중요할 수 있지만 그 상황에서도 놓치면 안 되는 것이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준비하기 위한’ 인재 활용”이라고 강조했다. ◇연봉 100억원(?) 꿈 깨=삼성전자 임원들은 매년 3월 말이면 속앓이를 한다. 이사의 연간 보수한도가 결정되면서 각종 인터넷 사이트 토론방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이다. 올해도 삼성전자 임원의 평균 연봉이 183억원이라는 기사가 실리며 누리꾼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질시의 댓글을 달았다. 한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는 삼성전자 임원 연봉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을 보며 어이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삼성전자 임원 연봉은) 회계기준에 따라 이사의 연간 보수한도를 정하는 것일 뿐 실제 그만큼 받는 것도 아닌데 난리 법석”이라며 “실제 100억원 이상의 연봉이 지급된다고 해도 성과에 따른 보상은 질시의 대상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인재들이 창조하는 성과물(또는 기대물)에 대한 보상을 ‘적절한 수준’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현석 대한상의 상무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식의 질시는 조직 내에서 글로벌 인재들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며 “이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연봉 100억원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의문”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 연봉 10억원, 20억원을 자랑하던 증권가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이 최근에는 종적을 감췄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들 대부분은 질시와 견제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스스로 생존의 방법을 찾고 있다. D투신 자산운용팀장 출신인 P씨는 “성과급에 붙는 36%의 세율 부담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조직 내에서의 견제가 행동반경을 좁혀놓았다”고 퇴사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 조그만 사모펀드를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P씨는 “위험은 커졌지만 마음은 진짜 편하다”고 밝혔다. ‘인재확보 전쟁’이라고 목소리는 높이지만 내심 ‘나보다 잘 나가는 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편향된 시각이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한 ‘스타탄생’을 기대한다는 것은 몽상에 불과할 것이다. [붙이는 미니박스] 능력을 사오지(Buy) 말고 키워라(Make) 내부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인재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맞춤형 인재를 자체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 모든 국가나 기업에 통용되는 핵심인재는 사실상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소니의 경우 지난 2000년 10월부터 ‘10년 후 사장’을 키우기 위해 임직원 교육시설인 ‘소니 대학(Sony University)’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는 16만명의 임직원 중 소니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만을 담금질한다. 세계적인 카드회사 비자(VISA)는 10% 정도의 직원들이 핵심인재로 분류돼 특별 관리된다. 전담임원이 1대1로 붙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관리프로그램은 동료 직원들이 모르게 비공개로 진행된다. 제프리 페퍼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기업이나 국가의 핵심인재 관리가 외부영입만을 고집하다 보면 조직문화와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페퍼 교수는 “스타급 인재 채용에 대한 과신은 구성원들의 의욕을 꺾을 우려가 있다”며 “내부인재 육성과 외부인재 영입의 균형잡힌 인재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L연구위원의 사례는 글로벌 핵심인재를 둘러싸고 있는 한국내 여건이 어떤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소수이기는 해도 L연구위원의 경우처럼 핀란드나 미국 등 선진국과 맞먹는 급여를 받는 인재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도 내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거액 연봉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또다른 문제들이 발견된다. 정완영 동서대학 교수는 “선진국과 동등한 수준의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한국의 인재들은 자녀교육, 노후설계 등으로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사오정, 오륙도 등의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며 “여기다 능력에 따른 보상을 마치 특권계층만이 가지는 것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사회인식은 글로벌 인재의 등을 떠밀고 있다”고 말했다. "연봉보다 삶의 질 중요" R&D센터, 강남으로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는 데 있어서는 연봉보다는 삶의 질을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 5~6월 연구개발(R&D) 인력을 뽑기 위해 UC버클리와 스탠퍼드대ㆍMIT 등 미국의 명문공대를 찾았던 김덕중 두산인프라코어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난감한 일을 겪었다. 김 부사장은 미국에 도착할 때만 하더라도 유학생들의 주된 관심사는 연봉 문제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기업설명회장에 나온 유학생들은 김 부사장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에 관심을 보였다. 그들이 쏟아낸 주요 질문은 "연구소가 있는 곳이 어디냐" "교육ㆍ교통 등 생활여건은 좋으냐" 등 삶의 질과 관련된 것 일색이었다. 바쁜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김 부사장의 머릿속에는 인천중앙연구소를 용인 수지로 서둘러 이전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대기업 R&D센터가 강남으로 모여들고 있다.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하고 생산공장을 수도권 외 지역으로 이전하는 추세에 역행하는 듯 보이지만 R&D 인재에 목마른 대기업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다. LG전자는 오는 2009년 2월까지 2,600억원을 투자해 서울 양재동에 3만8,000평 규모의 연구소인 '서초R&D캠퍼스'를 건설한다. 이 연구소는 2009년 완공되면 디지털복합기와 홈네트워크ㆍ스토리지 관련 연구를 한다. LG전자는 또 경기도 평택ㆍ안양 등지에 분산됐던 이동단말연구소를 강남권인 서울 가산동으로 통합했다. 이 회사가 R&D센터를 이전한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 특히 교육에서부터 모든 인프라가 갖춰진 강남이 아니면 글로벌 인재를 끌어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 지방에 R&D센터를 그대로 둘 경우 상대적으로 유리한 수원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삼성전자에 우수한 인재를 다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삼성전자는 본사를 아예 서초사옥으로 옮기며 수원사업장 내 각 총괄 연구소를 강남 생활권으로 묶고 있다. 삼성전자 사업장이 있는 기흥ㆍ화성 등과 사원 아파트가 위치한 용인은 이미 강남 생활권으로 편입된 상태다. 주요 그룹 인사담당자들은 기업의 R&D센터 강남 이전이 단순한 욕심이 아닌 인재 갈증 해소를 위한 우물 터파기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앞으로 국내에 핵심인재가 원하는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는다면 R&D센터를 해외로 이전할 수도 있다"며 "인재에 대한 대우는 기업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정부와 사회의 몫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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