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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거꾸로 가는 기업정책
입력2004-05-04 17:22:57
수정
2004.05.04 17:22:57
[사설] 거꾸로 가는 기업정책
열린우리당과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 개혁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것은 지금의 경제여건이나 4.15총선이후 정치권의 경제살리기에 대한 다짐과는 너무 동떨어져 의아스러울 정도다. 완화의 필요성이 줄곧 제기된 출자총액제한과 금융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과 같은 해묵은 과제를 들고 나서는 것도 그러려니와 시한만료로 폐지된 공정위의 계좌추적권을 되살리려는 시도는 이해가 안된다.
이날 당정합의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재벌 계열 금융사의 의결권 제한에 관한 것이다. 당정은 우선 "재벌 금융회사의 계열사 의결권은 원래 없다"는 전제 아래 현재 30%에서 단계적으로 의결권을 축소하고, 일반 지주회사도 금융지주회사와 마찬가지로 자회사 이외의 국내회사 주식을 5% 초과해 소유하는 것을 금지키로 했다. 아울러 지난 2월 시한이 만료된 공정거래위의 계좌추적권도 부활시켜 3년 동안 유지키로 합의했다.
금융사의 자산이 대부분 고객의 것이라는 점에서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 하겠다는 것은 원론적으로 맞다. 그러나 그것은 형평의 원리에 부합돼야 한다. 외국계 금융사의 투자나 의결권은 100% 인정하면서 재벌계열이라는 이유로 국내 금융사에만 제한을 가하면 이는 역차별이고, 그 폐단은 외국 펀드의 SK㈜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은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출자예외인정기준 강화조치와 함께 경영안정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본다. 제한을 가하더라도 신중하고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이는 삼성생명을 통한 삼성전자의 경영권행사 문제와 직결된 것으로, 최근 삼성측은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가 적대적 인수합병의 대상이 될수 있다는 보고서를 공정위에 제출까지 한 바 있다. 우리는 삼성의 그 같은 주장이 위험을 다소 과장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이 60%를 넘는 여건에서 그럴 가능성을 부인할 수만도 없다고 본다.
투자부진은 기업들이 수익을 낼만한 신규사업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출자나 의결권 규제와는 관계가 없다는 공정위의 견해를 굳이 부인하진 않겠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경제살리기다. 정부도 정치권도 입만 열면 그렇게 말한다. 그런 상황에서 국정을 책임진 당정이 투자를 규제하고 경영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조치에 합의하고 있으니 앞뒤가 안 맞는다. 당정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민간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정치의 부패와 정부의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아직 정부 내에서 완전히 조율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므로 정부간 조정을 통해 경제회생과 재벌개혁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보완되길 기대한다.
입력시간 : 2004-05-0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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