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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21세기 파우스트

주인공 파우스트는 화학·의학·심령술 등 온갖 과학분야를 두루 섭렵한 장돌뱅이 박사 쯤 된다. 그는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지식욕과 현세의 쾌락을 채우기 위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한다.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힘. 이를 사는 대가로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지불한 것은 자신의 「영혼」이었다.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거는 행동파. 동서고금 할 것 없이 언제나,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캐릭터를 파우스트는 상징한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창조한 것은 18세기 「질풍노도」의 시대. 하지만 장밋빛 미래가 그려지는 정보사회에서도 파우스트는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청바지업체 「닉스」는 1등 상금 3억원을 내걸고 인터넷 도메인을 공모했다. 국내 사이버 경품 역사상 단연 최고액이었다. 예상대로, 공모 신청은 구름처럼 몰렸다. 무려 35만4,029건의 도메인이 접수됐다. 12만여명이 그 길고 긴 대열에 섰다. 1등 수상작은 공교롭게도 닉스에 인터넷 전용회선을 공급하는 아이네트가 소유한 도메인. 때문에 「각본에 의한 짜맞추기 아니냐」고 네티즌들이 거세게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주최측과 1등간의 담합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도메인 신청자들은 닉스측에 도메인 아이디어만 준 것이 아니다. 닉스는 3억원을 기대하는 공모 참여 희망자들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20가지가 넘는 개인 정보를 써내라는 것이었다. 이름부터 시작해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 휴대폰번호, 직장, 소속 부서, 혼인 여부…. 심지어는 거래은행과 계좌번호, 신용카드번호까지 (이 대목에서 소름이 쫙 끼쳤다고 많은 이들이 털어놓았다). 아무튼 닉스는 그 요구에 동의한 12만명을 회원으로 유치하고, 12만명 분의 정보를 확보했다. 닉스는 3억원을 내고 즉, 12만명에게 1인당 평균 2,500원을 주고 개인정보를 산 셈이다. 12만명은 2,500원 짜리로 환산된 자신에 대한 정보를, 그 2,500원도 못받고 넘겨줬다. 인간 영혼의 사이버판(版)은 개인정보다. 네트워크가 만드는 전자공간에서 따스한 영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접촉은 키보드 손가락질과 화면 응시하기를 매개로 한 접속만 있다. 거기서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인정보다. 그렇게 중요한 개인정보가 요즘 사이버공간에는 널려 있다. 많은 이들이 하소연한다. 「알려준 적이 없는데 나를 알고 E-메일 보내는 업체들이 어찌 그리도 많은가」고. 하지만 그들도 언젠가, 어디엔가 자신의 정보를 한 번 쯤 넘겨줬을 것이다. DB마케팅이 유행하면서 「개인정보는 사취·갈취·절도해서라도 손에 넣어야 할 목표」라는 인식이 횡행한다. 이 판국에 돈, 무료 ID, 온갖 경품을 기대하고 자신의 정보를 넘겨주는 것은 영혼을 팔아 넘기는 것과 다름 피해를 봐도 할 말이 유출되는 정보에 꼬리표가 달리는 것도 아니어서 어디서 어떻게 새나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해당 업체들은 본인의 동의로 정보를 얻었노라고 「무책임」을 강조할 게 뻔하다. 지금까지 이룩된 우리 정보사회가 아직은 단단하지 않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어느 시대나 존재하게 마련이다. 각자가 파우스트 되길 멈추는 수 밖에 없다. 李在權(정보통신부 차장)JAY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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