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신한은행의 서울 태평로 본점 로비는 생기 발랄한 청년들로 북적거렸다. 상반기 신입행원 모집 응시자들이 최종 면접을 보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250~300명 정도를 뽑는 이번 전형에 접수한 지원자는 무려 1만5,000여명. 심지어 인턴사원에까지 지망자가 몰려 지난 12일 마감된 하나은행 인턴사원 접수에는 50~70명 채용에 2,700여명이 지원했다. 이처럼 은행원 지망생은 늘고 있지만 이들의 사회 선배가 될 행원들은 자신의 직장에 대해 낙제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의 안정성이나 임금은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지만 개개인이 창의적으로 꿈을 펼치고 삶의 여유를 갖기에는 좋지 않은 직장이라는 조사 결과다. 이를 놓고 고연봉 은행원들의 모럴해저드라는 의견과 은행들이 신세대 직장문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라는 반론이 분분하다. 14일 서울경제신문이 국내 전업종에 걸쳐 '일하기 좋은 기업' 지수를 낸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의 최근 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니 은행들의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 중 65.4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서비스업 전체 평균인 63.6점을 턱걸이로 넘긴 수준. 그나마도 신한은행(74.7점)을 제외하면 모두 70점을 밑돌았으며 50점대인 곳도 있었다. 제조업종에서 80점대(포스코ㆍ삼성전자 등)를 넘는 기업이 나온 데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원들의 평균 연봉은 1인당 6,000만원대 안팎. 여기에 더해 금융노조는 현재 임금단체협상에서 8% 이상의 인상을 요구하고 있어 은행원들의 고연봉 행진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연봉에도 불구하고 은행원들이 직장에 대해 낙제점을 주는 것을 놓고 금융권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한 대형은행에서 은퇴한 전직 부행장은 "내 자식도 은행원으로 일하는 데 젊은 나이에 7,000만~8,000만원에 달하는 연봉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과연 현재의 은행원이 그만큼 받을 만큼 일을 하는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은행원들이 직장생활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을 '배부른 소리'로 치부할 일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의 인사담당자는 "한때 고졸 출신이 많았던 은행은 지금 우리사회에서 최고급 두뇌들이 몰리는 직장이 됐지만 은행의 영업내용은 과거 수준에서 답보수준인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내 은행들이 내수시장에서 안주할 뿐 아니라 특히 손쉬운 소매금융에만 치중하면서 고급인재를 뽑아 각종 고급 금융교육까지 시키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들이 수직적이고 구태의연한 조직문화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도 낙제점을 받은 이유로 꼽힌다. 실제로 이번 조사항목 중 창의적이고 즐거운 직장문화에 대한 질문 항목에서는 최고점인 신한은행마저도 67.4점을 받았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50점대를 받는 데 그쳤다. 한국능률컨설팅 관계자는 "요즘의 직장인들은 업무를 효율적으로 빨리 끝내고 여가 시간을 최대한 확보해 자아 계발에 투자하려는 성향이 짙고 팀이나 부서단위의 업무성과 못지않게 개인의 업무성과에 대해 공정한 인사평가를 받기를 원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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