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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 겨울 백두산 산행

흔히 백두산 등정은 흑풍구~기상대~천문봉 코스나 장백폭포~용문봉 코스를 이용한다. 그러나 장백폭포 쪽 등산로는 눈이 많이 내려 길이 완전히 끊겨 있었다. 등산코스로 잡은 기상대 쪽도 원래 천지(天池) 아래 100M까지 차도가 뚫려 있지만 역시 눈이 내려 지프를 타고 이동하기는 불가능했다.일단 설상차(雪上車)를 타고 해발 1,800M에 위치한 흑풍구까지 올라갔다. 천지까지 나머지 6㎞는 도보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겨울 바람이 매서웠지만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돼 추위는 참을만했다. 은백색의 밤눈길을 1시간쯤 걸었을까. 그나마 평탄한 등산로를 만들어주던 차도도 폭설 때문에 막혀버렸다. 할수없이 조선족 안내원을 따라 능선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방풍벽이 사라지자 즉시 백두산 칼바람이 몰려왔다. 털모자를 눌러쓰고 눈만 겨우 빠꼼하게 내놓았지만 얼굴이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 흩날리는 눈가루는 미세한 유리가루처럼 두 눈을 찔러왔다. 눈물이 얼어붙어 속눈썹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다. 입김은 금세 얼음이 되어 눈썹에 맺혔다. 영하 40도에 달하는 극한적인 추위.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하필 그날이 올들어 중국 옌변(延邊)지역에서도 가장 추웠다고 한다. 지린(吉林)성은 영하 36도까지 내려갔고, 내몽고 지역에서는 소나 말이 몇백마리씩 얼어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순간, 남은 거리가 얼마나 되나싶어 고개를 들었다. 멀리서 조난을 염려한 안내원이 멈춰서서 손전등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환각을 보았을까. 불빛이 두개라니…. 자세히 살펴보는 순간 신비감에 숨이 막히는 듯했다. 나머지 하나는 샛별이었다. 샛별이 안내원의 어깨에 내려앉아 쏟아질 듯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백두산 정상의 날씨는 맑았다. 눈·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일에 달하고, 완전히 개인 날은 40~50일에 불과하다는데 백두산 신령님께 감사라도 드리고 싶었다. 천지는 결빙돼 티끌 하나 없는 게 하얀 비단을 깔아놓은 것 같았다. 너무 백색이라 오히려 푸른색을 띤 천지가 달빛을 받아 교교하게 빛나는 모습은 경이 그 자체였다. 향로봉·청석봉·장군봉 등 2,500M가 넘는 봉우리 16좌는 위압적인 태도로 천지를 호위하고 있었다. 『백두산은 천산성악(天山聖岳)으로 신앙의 대상이요, 역사의 출발점이며, 문화의 일체 종자이고, 동방대중의 생명의 원적(原籍)이었으며, 화복의 사명(司命)이고, 활동의 주축(主軸)이었습니다.』 육당 최남선이 1926년 「백두산근참기」에서 왜 그토록 울부짖었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백두산 천지를 찍으려 품안에 있던 카메라를 꺼냈다. 백두산은 자신의 모습을 한번 슬쩍 보여준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을까. 배터리가 얼어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았다. 9명이 올라갔건만 작동하는 카메라는 단 한대밖에 없었다. 허탈감과 함께 추위도 한꺼번에 밀려왔다. 산을 오를 때는 그래도 견딜만하더니 정상에 다다르자 몸에 배인 땀이 식으면서 체온이 급격하게 내려갔다. 몸을 녹이려고 가져간 중국술 고량주에 얼음이 끼고, 등산용 온도계가 작동을 멈추었다. 등산용 외투 바로 안쪽에도 서리가 맺혔다. 천문봉(天文峰·2670M)에서 일출을 기다리며 동동 뛰었다. 아침 6시15분 쯤이었다. 드디어 「삼대(三代)에 걸쳐 공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두산 일출이 장엄한 광경을 드러냈다. 파랗던 지평선은 하얗게 표백되더니 어느덧 갈색으로, 나중에는 벌겋게 타올랐다. 태양이 막 떠오를 때는 지평선에서 들불이 일어나는 듯보였다. 몇 사람의 눈도 벌겋게 상기되더니 눈물이 흘렀다. 절대순수, 절대환희의 세계가 무엇인지 맛보는 순간이었다. 하산길. 모두들 말을 잃었다. 눈으로 본 것을 가슴으로 옮겨 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던 탓이다. 백두산을 절반쯤 내려왔을 때 40대의 동행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백두산= 글·최형욱기자/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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