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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대우를 분해해 수술하는 것은 예상대로 힘들었다. 빚쟁이들의 아우성이 갈수록 커졌다, 게중에서도 오랜 세월 한국을 ‘손 쉬운 먹잇감’ 정도로 취급했던 ‘파란 눈’의 해외 채권단들을 상대하는 것은 더더욱 힘겨웠다. 장장 7개월여의 협상. 여기에서 우리는 국가 부도 위기에서 허우적대던 97년의 상황과 사뭇 다른 광경을 목도할 수 있다. 김우중 회장이 남긴 ‘밝은 빛’이었다면 지나친 비약이고 역설일까.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과 김 회장의 생사를 건 담판이 이어지던 7월 중순. 대우 붕괴의 굉음은 해외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의도 오갑수 금감원 부원장보 집무실. 일단의 파란눈들이 찾았다. 이헌재는 지레 자리를 피했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했다. “왜 나한테 오냐. 김 회장한테 가보아라.” 호통을 쳤지만, 그들은 이미 ‘황제’에 대한 신뢰를 잃은 뒤였다. 외채 협상은 ‘정부만 찾으면 된다’는 비뚤어진 믿음을 심어준 것도 사실이었다. “대우에 빌려준게 아니라 한국에 준 것이다. 한국에서 재벌은 국가요, 결국 대우는 국가가 아닌가. 원리금을 보장해라.” “정부가 대우와 무슨 상관이 있냐. 너희 책임은 너희가 져라.” 다급해진 그들, 이번에는 자국 정부까지 등에 업고 압력을 가해 왔다. “외국 대사들까지 찾아왔어요. 정부가 책임지지 않으면 통상문제로 연결될 것이란 엄포까지….”(고위 관료 A씨) 설전이 이어지는 동안 해외법인은 한계 상황으로 내밀렸다. 급기야 8월초. 홍콩에서 일이 터졌다. 프랑스계 은행인 BFCE가 홍콩법원에 대우의 파산을 선언한 것이다. 정부도 넋 놓고 있을 수 없는 노릇. 그들의 협조가 없으면 구조조정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빚이 얼마인지부터 알아봤다. 99억4,000만달러, 연내 만기액만 52억달러였다. 99년 8월18일. 이날은 해외 협상의 첫 시발점이었다. 김태구 대우 구조조정본부장이 GM과 최종 담판 후 돌아오는 날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대우의 앞날을 가늠할 기점이었다. 서울 힐튼호텔에 모여든 69개 해외 금융기관. 그들은 모처럼 “협상 창구를 만들어달라”는 우리 요구를 받아 들였다. 씨티 등 9곳이 ‘운영위원회’ 멤버로 구성됐다. 우리 자문은 라자드와 클리어리, 그리고 외채 협상의 영웅이었던 마크 워커가 맡았다. 협상 틀은 어렵사리 마련됐지만 굵직한 국제 협상 경험이 없는 우리 채권단은 미숙했다. 정부가 나설 수도 없고…. 구원 투수가 필요했다. 워크아웃 하루전인 8월25일 오후. 오호근 기업구조조정위원장실에 전화가 걸려 왔다. 이헌재 위원장이었다. “형님이 좀 맡아 줘요.”“대신 조건이 있어. 정부는 철저하게 빠져.” 창구는 일원화됐다. 하지만 ‘대우는 곧 국가’라는 주장은 여전했다. 우리 정부가 미동조차 하지 않자, 마침내 그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9월28일 홍콩. 파란 눈들은 정부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외국은행을 평등하게 대우하겠다고 약속하고 지키지 않고 있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협의도 없고 외국은행을 위한 의미 있는 계획도 없다.” 아이러니일까. 불만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우회적으로 밝히는 계기가 됐다. ‘의미 있는 계획’, 그것은 대우가 7월 제공한 ‘10조 담보’에 있었다. 협상 중반의 틀을 제공한 담보문제가 수면위로 등장한 것. 자신들에게도 걸맞는 먹잇거리를 챙겨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도 수긍했다. 당근도 없이 도와달라는 것은 무리고, 국내 채권단과 차별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10월 5일 대우센터. 수십명의 외국인들이 다시 모였다. 다음날 3시간여의 마라톤 협상이 이어지기까지…. 오 위원장의 집무실. “협상이 진전을 보이고 있어.” 말을 아꼈던 그가 낙관론을 보인 것은 이례적이었다. “정부나 국책은행 지급보증 요구는 철회한 것 같아. 대신 워크아웃 때 거부권을 달라 하더군. 하긴 그들도 빚쟁이인데.” 중반 협상은 공동담보와 거부권, 둘로 모아졌다. 거부권이야 주면 그만이지만 담보 문제가 쉽지 않았다. 그들을 달래려 담보 우선권을 주기로 하자 이번에는 우리 채권단이 반발하고 나섰다. 담보가치가 절반도 안될 만큼 떨어졌는데, “우린 뭘 먹느냐”는 역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별 수 있나, 그들의 입맛을 먼저 맞춰주는 수밖에. 힘들게 해결됐지만 사실 담보문제는 협상 큰 테두리에서는 그들의 불만을 잠시 달랠‘위로 선물’에 불과했다. 어차피 그들의 관심은 워크아웃이 아니라, 한 푼이라도 더 건진 뒤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10월 중순. 협상의 대미를 장식할 ‘바이아웃(buyout)’방식은 이 때 등장했다. 빚을 일부 깎아 우리가 사 준 뒤 워크아웃에서 빠지게 하는 것이었다. 본게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정부도 협상이 안될 경우에 대비한 최종 수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법정 관리였다. 그리고 D-데이를 잡았다. 10월 28일 도쿄. 긴장감이 흘렀다. 회의가 무르익을 즈음, 오 위원장은 카드를 내밀었다. “부채 일부를 탕감한 후 2~3년내 갚겠다. 대신 워크아웃은 한국측이 주도한다.” 모든 패를 다 던졌다. 이제 벼랑 끝 싸움만 남았다. 한달여 계속된 협상, 막판으로 갈수록 긴박함이 더해졌다. 12월1일 오후 3시 대우센터. 불꽃 튀는 논쟁, 우리 주장은 이제 명료해졌다. 워크아웃에 참여하든, 바이아웃으로 빠지든, 법정관리에 들어가든. 빚진 자의 배짱치고는 참으로 뻔뻔했다. ‘대우는 국가’라며 목을 뻣뻣이 세웠던 파란 눈들이 오히려 초조해져 갔다. 이틀 후. 입을 열지 않았던 관료들이 잇따라 목소리를 냈다. “다음주엔 매듭지어질 거야.”(이헌재) 이제 남은 것은 부채를 얼마나 깎을지를 결정하는 일. 우리측 손길이 빨라졌다. 254개에 달하는 대우 법인의 자산가치를 일일이 따져 회수율, 즉 그들에게 갚을 돈을 산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대우 18%, 대우차 33%, 대우중공업 65%, 대우전자 34%, 평균으로 34%가 나왔다. 그들에게는 어처구니 없는 수치였다. 파란 눈 대표들은 즉시 모든 외국 기관에 서한을 보냈다. “이 제안은 협상을 시작할 근거가 되지 못 한다. 근거가 없는 허구다.” 자문 기관을 국내에서 아예 철수시켜 버렸다. 우리도 이에 뒤지지 않았다. 최후 통첩을 보냈다. “연말까지 수용하지 않으면 ㈜대우를 법정관리에 넣겠다.” 숨막히는 줄다리기가 일주일 이상 계속됐다. 법정관리 시한이 속속 다가왔다. 물론 우리측도 무조건 법정관리를 택하기도 힘들었다. 뻥카드라 할까. 준비가 됐다 해도 시장에 미칠 충격을 생각하면…. 12월 17일 오전 은행회관. 이헌재 위원장이 은행장들을 불러 모았다. “추가 협상을 위해 2000년 1월 하순까지 (법정관리를)3~4주 유보한다.” 회의에선 회수율을 34%에서 36.5%로 올렸다. 계열사별로는 19%에서 92%로 올라갔다. 성탄절을 사흘 앞 둔 22일, 그들의 공식 반응이 다시 나왔다. 자체 산정한 회수율을 제시한 것이다. “㈜대우 40%, 대우차 52%, 대우전자 42%, 대우중공업 95%” 평균 59%. 우리 안과는 여전히 현격하게 차이를 보였다. 그렇게 해를 넘겼다. 정부는 법정관리 준비팀까지 구성하고 나섰다. 설마…. 그들이 바빠졌다. 법정관리까지 시한은 단 일주일. 이 위원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래 끌지 않을 것이다.” 계속되는 압박, 신호가 왔다. 금감위에 보내온 서한엔 커다란 변화의 메시지가 담겼다. “59%에서 45%로 낮추겠다. 법정관리에 넣으면 다른 계열사 자산을 가압류하겠다.” 하지만 협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협상은 종착역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1월20일 오후. 홍콩 만다린호텔. ‘세기(世紀)의 담판’, 삼엄한 분위기에 적막감마저 돌았다.밤늦게까지 계속됐지만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했다. 다음날 오전 10시 시작된 이틀째 회의. 일부 외국인들은 숙소에서 아예 짐을 챙기고 협상장에 나왔다. 결판을 내려는 듯. 최종순간까지 우리의 무기는 법정관리, 오 위원장은 해외속담까지 들먹였다. “쓰러진 말은 채찍질해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대우의 분식회계와 계열사간 불법자금거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회수율을 높여달라고 압박했다. 그렇게 하루가 꼬박 지나갔다. 2000년 1월21일 밤. 과천 재경부가 바빠졌다. 11시가 조금 안된 시간, 홍콩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39%~40%’. 타결을 알리는 신호였다. 5개월 만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협상 타결 소식에 대해 이렇게 촌평했다. “해외 금융 기관도 잘못된 여신행위에 책임을 진 첫 사례가 됐습니다. ‘대우는 곧 국가’라는 그들의 등식이 틀렸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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