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지방의 한 혁신도시에서 분양을 준비하던 A건설은 모델하우스 개관을 앞두고 돌연 분양을 연기했다. 한 광역의원이 분양가가 너무 높다며 더 내릴 것을 줄곧 요구하고 나섰고 해당 지방자치단체도 이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결국 지자체가 요구하는 수준까지 가격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A건설 관계자는 "투입된 비용만큼 가격을 받는 것이 당연한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가격을 낮추라고만 하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분양가 상승 우려 사라졌다=분양가상한제는 이미 유명무실한 제도다. 참여정부가 2005년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한 것은 과도한 분양가가 집값을 끌어올린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집값 하향 안정세가 4~5년간 계속돼온 지금 국내 주택 시장에서 분양가상한제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2008년 이후부터 건설업체의 가장 큰 고민은 미분양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라며 "굳이 상한제가 아니더라도 업체가 스스로 가격을 내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분양가상한제가 정책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사회 구성원의 갈등만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침체가 길어지는 수도권 중대형과 재개발·재건축부터라도 점진적으로 규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정책이 현재 상황에 유용한가를 생각했을 때 분양가상한제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며 "투기 지역 지정처럼 상한제도 지역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 침체기 장점보다 단점만=부동산 경기 침체기에 분양가상한제 적용에 따른 손해는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분양가상한제가 완화되면 건설사만 이익을 얻게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투입된 비용만큼 분양가를 책정하지 못하는 현재보다 건설 업체의 사정이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분양가상한제로 모든 자재와 기술력, 평면 개발이 획일화되면서 건설 업체의 시공능력과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분양가상한제가 오히려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서울에서 분양한 한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의 경우 조합원과 시공사가 마감재에 대한 이견으로 갈등이 불거지면서 분양이 예정보다 늦춰졌다. 조합원은 고급 마감재 교체를 요구했지만 시공사는 이 경우 분양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분양가상한제 때문에 힘들다는 입장이었다. 건설 업체의 한 관계자는 "3.3㎡당 3,000만원이 넘는 고급 아파트까지 표준 건축비를 적용해 가격을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소비자의 선택권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편법 난무 분양가 상한제…소비자 피해 더 키울 수도=아울러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갖가지 편법이 동원되기도 해 소비자의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분양 전환 가격을 두고 갈등을 빚은 서울 용산구 '한남 더힐'은 애초 시행사가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임대로 공급한 케이스다. 강남권 고급 연립주택이 대부분 20가구 이하 단위로 쪼개 분양하는 것도 20가구 이하 단지는 주택법 적용을 받지 않아 분양가 상한제를 피할 수 있어서다.
부동산 개발 업체의 한 관계자는 "60가구 규모의 고급 아파트를 지을 경우 시행사 입장에서는 분양가상한제가 없다면 당연히 한꺼번에 분양하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유리하다"며 "줄어든 비용만큼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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