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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주도권 되찾자] <2> 대형IB 시대의 서막

몸집 불리고 체질 확 바꾼 토종 IB들 "외국계 물렀거라"<br>대우·삼성·우리證 등 5곳 대대적인 증자 작업 통해<br>자기자본 3조원 벽 넘어 M&A 시장 상위권 싹쓸이<br>IPO·프라임브로커 부문도 전담팀 만들어 적극 참여<br>글로벌업체와 전면전 예고

그동안 외국계 투자은행(IB)에 안방을 내줬던 국내 증권사들이 최근 몸집을 불리고 반격에 나서면서 국내 IB 시장에도 환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서울경제DB


요즘 모 대형 증권사의 투자은행(IB) 책임자가 지니고 있는 노트에는 인수합병(M&A)할 대상 회사들의 리스트가 빼곡히 적혀 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해외 기업을 사들인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지금 그의 노트에는 국내는 물론 유럽의 대형기업들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국내 IB 시장에서 해외 IB들을 내몰고 우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게 목표"라며 "국내 M&A와 기업공개(IPO)는 물론 해외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국내 기업과 매칭시키는 크로스보드(Cross-board) M&A도 이러한 목표에 포함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동안 M&A와 IPO 시장에서 외국계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던 국내 금융투자업체들이 IB 역량을 키우기 위한 대대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 대규모 증자를 통해 몸집을 불리고 IB 조직을 개편함으로써 외국계에 빼앗긴 안방을 되찾는 것은 물론이고 글로벌 IB 시장에서도 맞대결을 벌일 기세다.

사실 지난 2010년까지 국내 IB 시장은 외국계 IB들의 독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블룸버그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2010년 국내 M&A 재무자문 1위를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시장 점유율 18.4%)가 차지한 것을 비롯해 모건스탠리(14.4%), 노무라(10.0%), 크레디트스위스(9,4%), 맥쿼리(9.4%) 등이 상위 6위까지 휩쓸었다. 국내 기업 중에는 삼정KPMG가 2위를 차지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상황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국내 IB들이 대거 약진하며 시장 판도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실제로 우리투자증권이 18%에 달하는 시장 점유율로 1위 자리를 꿰찬 데 이어 산업은행(17.9%), 삼성증권(14.5%)이 각각 2, 3위를 차지하는 등 빅3 자리를 국내 IB가 차지했다. M&A 시장에서 막강 파워를 자랑했던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는 4위와 5위로 밀려났다. 안방에서만큼은 국내 IB의 경쟁력이 외국계를 능가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의 해외 발행 분야에서는 여전히 국내 IB들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해외채권 발행은 BoA메릴리치와 HSBC, BNP파리바 등이 휩쓸었고 IPO를 포함한 주식 발행에서도 1, 2위 모두 외국계가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에는 국내 IB들의 위상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내 IB 시장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됐던 덩치 문제가 어느 정도는 해소됐기 때문이다. 이미 대우증권(3조8,000억원), 삼성증권(3조2,000억원), 우리투자증권(3조3,000억원), 한국투자증권(3조원), 현대증권(3조1,000억원) 등 국내 대형 5개사가 지난해 대규모 증자를 통해 그동안 한번도 넘지 못했던 자기자본 3조원의 벽을 넘어섰다.

이미 그 단초는 해외에서 이미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 대형 증권사는 유럽에서 5조원대에 이르는 대형 기업 매물을 확보해 국내에서 인수 대상자를 물색하기도 했다. 비록 덩치가 커 국내에서 인수자를 찾는 데 실패하기는 했지만 해외에서 대형 매물을 확보했다는 것 자체가 국내 IB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이는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금융위원회가 대형 IB로서의 자격요건을 3조원으로 내놓았지만 증자 부담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증권사마다 서로 눈치보기에 바빴다.



그런데 지난해 9월7일 시장이 화들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대우증권이 무려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유상증자를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당시 대우증권의 자기자본 규모가 2조8,000억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무려 50%나 자본금을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대우증권의 이러한 승부수는 곧 다른 빅4의 증자 경쟁을 불러왔고 결국 당초 예상보다 빠른 올 초 5대 증권사가 모두 자기자본 3조원을 돌파했다.

시장에서는 대규모 증자를 통해 IB 사업에 나선 이상 M&A와 IPO, 프라임브로커 등의 시장을 놓고 국내와 외국계 간 전면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영채 우리투자증권 IB대표는 "이미 외국계 IB를 국내시장에서 몰아내기 위한 전면전을 시작한 상태"라며 "내부적으로는 국내 기업들에 대한 해외로드쇼를 더욱 강화하고 국내 대형기업들의 빅딜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신세계ㆍ이마트 분할 등으로 M&A 부문 업계 3위까지 올라선 자신감으로 올해 해외 IB들의 기를 누르겠다는 각오다. 삼성증권은 채권자본시장(DCM)사업부를 강화하는 등 올해 IB 조직을 대폭 개편했다. IPO와 DCM, M&A 등 IB 전반에서 최강자로 올라서겠다는 계획이다.

대우증권도 올해 1조원이 넘는 메가딜(대형 M&A) 부문 등에서 독보적인 1위를 굳히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지난해 대한통운ㆍ토마토저축은행 등 매각을 완료한 데 이어 올해도 우리금융ㆍ대우조선해양 등의 매각자문으로 IB 부문 매출이 절대적으로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주식자본시장(ECM)과 채권자본시장(DCM), 메가딜에서 외형과 수익성을 키워 시장점유율 1위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국내 증권사들의 조직개편도 이미 완료된 상태다. 대우증권은 IB사업부의 커버리지 본부를 통합해 시너지를 높이고 프라임브로커 사업부의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했고 삼성증권 역시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 사업부를 강화, 대표이사 직속으로 설치하는 등 IB 업무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우리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도 전담팀을 구성하고 IB 조직을 확대 개편해 시장 공략에 나섰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프라임브로커 사업의 기초를 다져줄 리서치 역량과 리스크 관리 기법, 고액자산가 관리 등 자양분이 충분하다"며 "초기시장 선점과 신사업 역량 강화를 통해 넘버1 IB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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