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 대표단이 공동성명서에 자유무역협정(FTA) '연내 타결'이라는 문구를 반드시 넣자고 강하게 요구해왔습니다. FTA 체결에 대한 중국의 의지가 예상 밖으로 더 크다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3일 정상회담에서 한중 FTA 체결에 속도를 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연내 타결'을 언급한 적은 있지만 공식 성명서에 이 같은 입장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견상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협상을 진행하려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이 조바심을 내며 협상을 채근하는 모양새다.
중국의 FTA 접근 방식을 두고 정부 안팎에서는 중국이 FTA에 따른 경제적 효과의 극대화보다도 외교·안보 측면을 더욱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삼겠다는 의미다. 중국의 FTA 속도 높이기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음은 물론이다. 한중 FTA와 TPP 참여를 동시에 저울질하면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서 있는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협상에서 최대한 얻을 것은 얻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한국 입장에서 한중 FTA는 '계륵'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양국 간 무관세 고속도로가 열리면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FTA를 체결해야 할 대상은 아니었다. 바로 중국 농수산물의 수입 홍수로 국내 농어가가 초토화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중국의 채근과 달리 정부는 짐짓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당초 이번주 대구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제12차 협상도 다음주 이후로 연기했다. 일종의 '애태우기' 작전인 셈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연말까지 시간이 빠듯하지만 협상을 충실히 진행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지역무역협정팀장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TPP 연내 타결을 거듭 강조하고 있어 중국 입장에서도 한중 FTA가 늦어지면 자칫 고립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중국이 연내 타결 의지를 천명한 만큼 이를 지렛대로 삼아 서비스·투자 측면에서 우리가 양보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향후 FTA 협상 과정에서 현재 품목 수 기준 90%로 책정된 자유화율은 다소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 정상은 이번 공동성명에서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유화율은 전체 교역품목에서 관세가 철폐되는 품목의 비중을 의미하는데 지난해 1단계 협상에서 90%로 정해졌다. 양국이 거래하는 품목이 100개라면 이 중 10개는 '초민감품목'으로 묶어 현행 관세를 유지하고 나머지 90개 품목은 관세 부담을 푸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초민감품목(10%)을 제외한 '민감품목'과 '일반품목'의 비중을 정하는 '스테이징' 작업이 다음주 이후 진행되는데 품목을 넣고 빼는 과정에서 자유화율이 90% 이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실제로 중국은 개방을 요구하는 농산물의 전체 품목 수를 줄이는 대신 고추·양파 같은 주력 농산물에 대한 관세철폐를 요구하는 것으로 최근 협상 방향을 전환했다. 우리나라가 중국과 교역하는 농산물의 품목 수는 총 1,612개로 자유화율이 높아지면 우리가 시장을 열어야 하는 농산물의 수도 늘어나게 된다. 정부는 주력 농산물은 최대한 보호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연내 타결을 이루기 위해서는 양보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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