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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이머징마켓, 인플레 직격탄에 '제2 위기설'

고유가·고물가로 무역적자·통화약세·성장둔화<br>외국자본 이탈 조짐…일부 국가선 달러사재기<br>전문가들 "10년전 환란과는 본질적으로 달라"

지난달 26일 인도 동부 부바네스와르의 한 주유소에서 이륜차 운전자들이 기름을 넣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블룸버그 자료사진



[글로벌 포커스] 이머징마켓, 인플레 직격탄에 '제2 위기설' 고유가·고물가로 무역적자·통화약세·성장둔화외국자본 이탈 조짐…일부 국가선 달러사재기전문가들 "10년전 환란과는 본질적으로 달라" 김승연 기자 bloom@sed.co.kr 지난달 26일 인도 동부 부바네스와르의 한 주유소에서 이륜차 운전자들이 기름을 넣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블룸버그 자료사진 2일로 태국 통화인 밧화가 붕괴된지 11주년을 맞는다. 1997년 여름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발생한 통화위기는 인도네시아, 홍콩으로 북상하며 그해 가을 한국의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아시아 국가들은 금융위기의 폐허를 극복했고,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 자금이 다시 신흥시장으로 몰려갔다. 하지만 최근 기록적인 고유가와 국제 곡물가격 폭등으로 이머징 마켓에 '제2의 위기'가 감돌고 있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내수경기가 위축되고 늘어나는 무역수지 적자는 이머징 마켓의 통화가치를 하락시키고 있다. 신흥국가들은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금리인상이나 외환시장 개입에 나서고 있지만, 일부 국가에선 올들어 주가가 반토막 나며 '자본이탈'(capital flight)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업을 하는 교민 K씨는 "제2의 외환위기가 온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교민들도 달러를 사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가는 급등하고, 외국기업은 빠져나가고 농산물 수출은 막히고 있습니다. 90년대말에 금융위기를 겪은 경험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위기가 또 올 것으로 감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정부는 공식적으로 인플레이션이 8% 정도라고 발표하지만, 민간 연구소에선 30%가 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지 통계청 직원들이 통계 조작을 중단하라고 시위를 하자, 중앙정부에서 그 직원들을 해고했을 정도니 실제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수년간 고도의 경제성장을 구가해온 신흥 국가들이 인플레이션의 직격탄을 맞아 성장 모멘텀을 잃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머징마켓의 물가상승률은 가히 기록적이다. 베트남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16개월째 증가세를 보여 지난 6월엔 26.8%로 1992년 이후 최고치에 달했다. 중국의 5월 CPI 상승률은 8.1%로 전년동기 대비 3%이상 증가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번 여름에 이머징 국가 10개국 중 절반이 10%이상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전 세계 인구의 3분의2가 두자릿수 물가상승률에 직면하는 셈이다. 이머징 마켓의 위기를 유발한 직접적인 원인은 국제원유와 곡물가격의 폭등이다. 러시아, 브라질과 같은 자원 보유국은 위기에서 빗나가고 있지만, 중국ㆍ인도ㆍ베트남ㆍ아르헨티나등 원자재를 거의 외국에서 수입하는 나라들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유가, 원자재, 곡물가 폭등은 인플레이션 가중->무역적자 확대->통화약세->증시 폭락->경기 둔화->성장둔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면서 이머징 마켓의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의 올 상반기 무역적자는 170억달러에 육박해 지난 한해 적자분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의 지난 4월 무역적자는 사상 최대인 98억7,000만달러를 기록했고, 태국은 4월 무역적자가 17억7,000만달러로 월단위 기준 12년만에 최고 수준이다. 고유가와 곡물가격에서 촉발된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은 아시아 이머징 국가의 통화가치를 급락시키고 있다. 1일 태국 밧화는 달러당 33.40밧을 기록, 연초대비 12% 폭락했고, 베트남 동화는 이날 달러당 1만6,844동에 움직여 지난 3월과 비교해 6.5% 하락했다. 또다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이머징마켓 통화위기가 발원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최근 폭락하는 현지 통화의 헤지수단으로 금 사재기 열풍이 불자, 금 수입을 잠정 중단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인도 루피화는 지난 6개월사이 10.5%나 떨어졌다. 이에 따라 이들 통화당국은 금리인상 및 달러매도 등 시장개입을 단행해 환율방어에 나섰다. 인도 중앙은행은 지난달 두번 연속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0.75%, 0.5%포인트씩 올렸다. 중국도 위안화 절상속도를 높이는 가운데 이번 주내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됐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무역거래에서 아예 달러 대신 자국통화를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이머징 마켓의 경제위기설이 나돌자 외국 투자자본이 이머징 마켓을 급속히 이탈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 인도 증시는 올들어 각각 48%, 21% 하락했다. 베트남의 경우 57%나 폭락해 시총의 3분의2가 증발했다. 무디스 이코노미닷컴은 "베트남이 통화가치 하락으로 금 수입이 급증하고 무역적자가 확대됨에 따라 급격한 자본이탈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아르헨티나 증시는 5월 한달 1억6,000만달러 상당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인플레이션은 또 이머징 마켓의 성장세를 둔화시키고 있다. 베트남의 지난 상반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5%에 그쳐 지난해 같은기간의 7.9%를 크게 못미쳤다. 중국은 올해 성장률을 지난해의 11.9%를 하회한 10.3%로 낮춰 전망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아시아ㆍ남미 이머징 마켓 성장률이 6.7%선에 머물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신용평가기관 피치사는 26일 보고서에서 "이머징마켓 경제가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급격히 저하되고 있다"며 "일부 국가의 중앙은행이 물가상승 리스크가 가중되고 있음에도 금리인상에 소극적이어서 환율상승을 용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10년전 이머징 마켓 위기와 지금의 위기 가능성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진단한다. 1990년대말에는 미국 경제가 장기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사이에 이머징마켓이 붕괴됐기 때문에 복구가 쉬웠지만, 지금은 미국 경제가 수십년만에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고, 유럽과 일본도 다른 나라를 지원할 여력이 없는 상태다. 또 작금의 글로벌 경제 균열은 세계 최대경제권인 미국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가장 약한 고리인 이머징 마켓이 붕괴될 경우 그 타격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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